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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까지 보람찬 봉사할래요…”

뉴시스 기자 입력 2017.01.10 15:57 수정 2017.01.10 15:57

영등포 쪽방촌에 18년간 따뜻한 한끼 식사 대접영등포 쪽방촌에 18년간 따뜻한 한끼 식사 대접

대형 쇼핑몰이 밀집해 있어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영등포역. 그러나 6번 출구에서 뒷골목으로 5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새해 첫째주 목요일인 지난 5일 서울의 대표 낙후지역인 영등포 쪽방촌을 찾았다. 쪽방촌 입구에 설치된 '청소년 통행 금지구역'이라는 팻말이 보임과 동시에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거리 곳곳에는 버려진 쓰레기더미로 가득했다. 좁은 골목길을 조금 더 들어가 보면 60여개의 판잣집이 빼곡하게 밀집해 있다.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0.5~2평 남짓한 방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600여명의 우리 이웃들이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75) 할머니의 방은 오전인데도 깜깜했다. 다행히 교회에서 후원받은 연탄으로 방 안에는 온기가 돌았다.쪽방촌에서 홀로 산지 수십 년이 됐다는 할머니는 자세한 얘기를 하는 것을 꺼려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길에서 넘어진 바람에 허리와 고관절이 내려앉아 거동이 불편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김 할머니는 "교회와 절에서 음식과 연탄을 나눠 줘 굶거나 얼어 죽지는 않는다"면서도 "정부보조금으로 월세 20만원을 내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몸이 불편해도 수술은 엄두도 못 낸다. 죽지 못해 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골목길 한켠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국수를 삶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쪽방촌도우미봉사회'사람들이다. 쪽방촌도우미봉사회는 조계사 붓다맘봉사회의 전신이다. 봉사회를 이끌고 있는 서울 강서경찰서 염창파출소 김윤석(55) 경위는 지난 2001년 박부득(63·여) 팀장과 쪽방촌도우미봉사회를 결성, 쪽방촌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이들은 18년째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주 목요일마다 쪽방 주민들을 위한 무료 급식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잔치국수 700인분을 준비하기 위해 박 팀장의 지휘 아래 15명의 자원봉사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날 김 경위는 주간 근무라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박 팀장은 "대부분 2~3그릇을 먹기 때문에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700인분 음식을 마련하려면 아침 7시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마음을 여는데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일회성으로 봉사를 하는 사람이 많아 주민들이 쉽게 정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서 음식을 대접하니 어느 날부터 그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언제 또 오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박 팀장은 "자식에게 버림받았거나 사업이 망해 미안한 마음에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등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라 타인에게 경계심도 많다"면서 "그래도 20년 가까이 매주 보니까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나를 '누나', '이모'라고 부르고 나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친근하게 부대낀다"고 웃으며 말했다.낮 12시부터 배부시간인데도 노숙자와 주민들은 오전 10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3년째 봉사를 하고 있는 안소연(55·여) 홍보이사는 주민들이 단순히 밥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봐주는 사람의 정이 그리워 찾아오는 이유도 크다고 말했다.안 이사는 "3년 전에 쪽방촌에 처음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너무 열악해서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며 "'그동안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데도 불만이 너무 많았구나'라는 생각에 깊은 반성을 했다"고 울먹거렸다.또 "그들이 말은 거칠어도 눈을 보면 굉장히 맑다. 여기 오면 오히려 내가 얻는 게 훨씬 많다. 성숙해지고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 들어 이 일을 할 수 있음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낮 12시. 줄을 길게 늘어선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이 국수그릇을 받아 옆에 비치된 간이 테이블에 서서 허겁지겁 먹었다. 단 몇 분 만에 국수 3그릇을 비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날 유독 날이 따뜻해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몰려와 15분 만에 국수 300인분이 나갔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봉사자들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행여 더 못 먹는 사람이 있을까 "국수 더 드세요"라고 계속 외치기도 했다. 또 제주도 주민이 보시(布施)했다는 귤을 봉지에 3개씩 담아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안겨주기도 했다.주민들도 국수를 받아가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럼에도 일부 몇몇은 시비를 걸거나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려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김 경위가 출동해 상황을 정리하지만 이날은 박 팀장이 직접 나서서 "조용히 해야 우리가 앞으로도 국수를 삶을 수 있다"고 여장부처럼 외치자 일순간 조용해 졌다.이날은 겨울방학을 맞이해 남고생 3명도 일손을 도우기 위해 찾아왔다. 3명 모두 지난 여름 방학 때 처음 쪽방촌 봉사를 하면서 굉장히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화곡고에 재학 중인 최형준(17)군은 "처음에는 친구가 같이 가자해서 봉사실적도 채울 겸 왔는데 상상 이상으로 열악한 모습에 많이 놀랐다"며 "이번 겨울 방학 때는 매주 나와서 봉사를 할 생각이다. 친구들은 이 시간에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직접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더 큰 인생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고 의젓하게 말했다.쪽방촌도우미봉사회는 무료급식뿐만 아니라 쪽방촌 장애인 및 독거노인 120명에게 도시락 반찬을 제공하고 의료 봉사 및 김치, 연탄도 수시로 나눠주고 있다. 그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이들에게 최근 큰 고민이 생겼다. 음식을 마련하기 위한 거처가 무허가 건물이라 언제 철거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그나마 당산동 구(舊) 당산파출소 옥상에 있던 사무실이 2014년 재개발 공사로 철거가 되면서 쫓기다시피 이곳으로 옮겨오게 됐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봉사자들이 직접 자재를 모아 한 땀 한 땀 식당과 법당을 꾸렸으나 구청으로부터 철도청 소유의 땅이니 5월까지 철거하라는 지시를 받아 막막한 상황이다.게다가 정기적인 후원도 거의 없어 봉사자들의 사비로 음식 재료값을 충당하며 힘겹게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안 이사는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복지사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일군 이 건물이 언제 헐릴지 몰라 막막하다. 어떤 욕심도 없다. 단지 안정적으로 떳떳하게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희망했다.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는 박 팀장은 월급의 반 이상을 봉사하는 데 쓰고 있다. 그는 체력이 되는 한 죽을 때까지 쪽방촌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소망했다.박 팀장은 "내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 없다. 그냥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자 삶의 일부가 됐다. 지난 18년 동안 몸이 아프다가도 신기하게 목요일 아침만 되면 말짱해지더라.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김 경위도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절도범이나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재활치료 목적으로 쪽방촌에 데리고 나가 함께 봉사를 하면서 갱생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다"며 "죽을 때까지 봉사하고 싶다. 생활의 일부가 돼서 굉장히 즐겁다. 큰 대형 트럭에다가 주방 기구를 싣고 전국을 다니면서 무보시를 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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