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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바람, 사람 그리고 삶

황보문옥 기자 입력 2021.06.09 08:54 수정 2021.06.09 13:40

한국전력 경북본부 홍보팀장 정휘원


바람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즐겨 노래하는 유행가와 더불어 예부터 주요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로 이용되곤 한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구절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 시에서 우리는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공기라는 물질의 물리적 이동 현상이 소리를 만들고 결국은 그리움이라는 인간의 감정과 치환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누구나 아는 서양 고전 속의 인물로 돈키호테가 있다.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스페인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쉰 가까운 나이에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에 너무 빠져든 그는 어느 날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모두 현실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그 결과 낡은 칼과 창, 그리고 어설픈 투구를 걸치고 볼품없이 비쩍 마른 자신의 말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가 평원을 지나던 중 멀리 30~40개의 풍차가 나타나자 거인으로 착각하여 충직한 종자인 산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마라. 이 비겁하고 천한 자들아!···’ 라는 말과 함께 풍차로 돌진한다. 그 결과 세찬 바람에 돌아가는 풍차 날개에 돈키호테는 부상을 입고 만다.
혹자는 풍차라는 단어를 듣고 돈키호테가 네덜란드까지 여정을 떠난 것인가 하고 갸우뚱하기도 한다. 돈키호테의 배경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의 스페인으로, 이 당시 풍차는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다만 네덜란드의 경우 국토의 4분의 1이 바다보다 낮아 몇 세기에 걸쳐 바다를 메워 국토를 넓히고, 바닷가 마을의 간척지에 고인 물을 길어내기 위해 풍차를 광범위하게 설치하고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지금도 네덜란드에는 천 개가 넘는 풍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많은 풍차 들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풍차 주변이 관광지로 변하며 건물들이 들어서서 풍차가 충분한 바람을 얻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그 옛날 돈키호테가 싸웠던 농업을 위해 활용하던 풍차는 최근 바람을 이용한 저탄소 친환경 발전의 수단으로 다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몇 년 전 중국의 내몽고 지역으로 업무상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푸른 초원이 수평선과 만나고 군데군데 양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초지에 수십, 수백 기의 풍력발전기 날개가 무리지어 돌아가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인지 대부분의 날개가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고 양질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차로 몇 시간을 달려야 하는 오지에 이처럼 대규모의 풍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운영될 수 있는 것은 바로 1,000MW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한국전력 주도 SPC로 최근 서남해에 대규모 해상풍력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단계 풍력 실증사업은 60MW 규모로 2020년 1월에 준공하였으며, 2단계로 400MW 규모의 해상 풍력단지를 추진하고, 이후에는 총 2,000MW 규모를 추가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전력이 국내·외 풍력발전 사업을 수행한 풍부한 현장경험과 기술, 역량을 활용하여 한국의 풍력 발전사업 더 나아가 신재생 에너지사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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