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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경제

“노가다요? 제 평생 직업인 걸요”

뉴시스 기자 입력 2017.06.12 18:30 수정 2017.06.12 18:30

20대 건설노동자 ‘청춘버스’ 타다20대 건설노동자 ‘청춘버스’ 타다

"친구들요? 아무리 취업이 안 돼도 '노가다'는 절대 못 한다고 그러죠. 그동안 투자한 것이 얼마인데 하면서요."(박원일·26세·목수)지난 8일 박 씨와 같은 20대 건설·토목 현장근로자 40여 명이 청춘버스에 올랐다. 이들을 태운 청춘버스는 광화문광장을 시작으로 서울시청과 국회의사당, 한강공원을 차례로 방문하며 '건설현장직은 노가다'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이날 기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박 씨는 4년제 대학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학창시절 학점 4.0점을 넘긴 적도 있고 각종 아르바이트 경험도 있다. 심각한 취업난에도 한 방산업체 사무직에 졸업도 전에 스카우트 됐다고 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야근과 당직을 반복하며 뼈 빠지게 일을 하더라도 세금 제하면 180만원도 못 버는 것이 현실이었다. 박 씨는 "회사 선배들을 보니 이렇게 일하며 벌어서 차는 언제 사고 전세금은 어떻게 마련할지 싶더라고요. 물론 평생 혼자 산다면 이 돈으로도 살 수는 있겠죠. 하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월급으론 도저히 아이 기저귓값 대기도 힘들 것 같더군요. 서른 넘어서도 부모님 손을 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결국 그는 수습 기간이 끝나자마자 회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왔다. 지인의 소개로 건설 기능학교에 입학, 지금은 경기 안산시 한 아파트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고 있다. 사무직으로 일할 때보다 약 2배 더 많은 돈을 받는다.박씨는 "대학 동기들은 지금 공무원 시험이나 취업준비에 올인하고 있어요. 동기들보다 일찍, 그리고 많이 돈을 벌기 시작한 저를 보며 부럽다고 해요. 하지만 몇 년을 취준생 백수로 살더라도 본인들은 노가다는 절대 못 한대요. 대학까지 나오는 동안 그동안 투자한 것이 얼마인데 노가다를 하냐고요. 친척들 볼 낯도 없다네요. 요즘 어느 직장이든 힘든 것은 매한가지 아닙니까. 오히려 이 일은 땀 흘린 만큼 벌 수 있어 보람이 큽니다. 평생 이 일에 몸담을 것이에요."60대의 전유물, '노가다'로 천대받던 건설현장직에 최근 청년들이 유입하고 있다. 단기에 큰돈을 버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당당히 하나의 직업으로서 바라보는 이들이다. 12일 통계청 건설업 취업자 연령분포에 따르면 지난 2014년 20대는 전체 건설업 근로자의 6.7%로 지난 2000년(17.2%)에 비해 반감했다. 하지만 최근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한 청년들은 급격히 늘어났다. 건설노조에 가입한 20대 현장직 근로자는 올해 6월 기준 217명이다. 이들 중 86.1%가 지난해 이후 가입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전체 청년 건설현장 근로자는 줄었지만 반대로 근로자로서 권리를 찾겠다며 노조에 가입한 이들이 최근 2년 급격히 증가했다"며 "단기간 큰돈만 벌고 빠지는 아르바이트 개념이 아닌 직업으로서 진지하게 문을 두드리는 청년들이 늘어났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최근 취업난이 심각한 데다 입사해도 소득이 적어 어려움을 겪는 청춘들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또래보다 많은 돈을 받는 청년 현장 근로자들의 직업만족도는 꽤 큰 편이다.실제로 건설노조에서 20대 건설노동자 72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 보름간 설문조사를 한 결과 '건설현장에서 계속 일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62.5%가 "계속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일하는 환경이나 처우가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만 '노가다'란 편견이 힘들게 한다는 데 이들은 입을 모았다. 대구에서 올라온 김병준(28)씨는 이날 "예전처럼 망치질하고 나뭇더미를 나르는, 힘만 쓰는 일이 아니에요. 기술도 많이 요합니다. 노가다란 인식 때문에 20대들이 이 일을 외면하는데, 이대로 있다간 우리 기술이 전수되지 않아 다 빼앗길 것 같아요. 힘만 쓰는 일이란 편견을 버리고 다른 20대들도 저처럼 많이 도전했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설노조 설문조사에서도 청년들이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본 이유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62%)'이 가장 많이 꼽혔다. '안정적이지 않다'거나 '일거리가 많지 않다'는 등의 어려움도 제기됐다. 대구에서 온 성길모(27)씨는 "눈 오거나 비 오면 갑자기 일을 쉬고, 또 어떤 날은 갑자기 부르는 등 근무 일정이 불규칙한 것도 문제예요. 쉬는 날이 어느 정도 정해져야 친구나 가족들도 만나 술도 마시고 어울리기도 하는데 말이죠. 점점 주변에서 저를 부르지 않고 다들 떠나가는 느낌에 외로워요.정해진 휴무와 안정된 처우만 보장되더라도 좋은 직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같은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현장에 들어오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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