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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뉴스 구미

‘봉황이 두 날개 활짝 펴고 하늘을 날다’

김기환 기자 입력 2017.06.29 14:59 수정 2017.06.29 14:59

간직한‘선산 비봉산’을 아시나요 간직한‘선산 비봉산’을 아시나요

용재총화·택리지서‘조선인재반재영남 영남인재반재선산’기록 해발 531m 형제봉에 장원봉 위치…영봉리 장원급제 최다 ‘장원방(壯元坊)’봉새의 비상 막으려 고아읍 황당산에 그물을 쳐놓고 동네명 망장(網張)으로최근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돼 농심은 타 들어가고 스트레스가 엄청 쌓이고 있다.이러한 시기에 무더위를 식히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산책을 하면서 전설이 깃들은 선산 비봉산을 찾아본다. 구미시 선산읍을 감싸고 있는 비봉산은 글자의 뜻 그대로 봉황이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해발 531m의 형제봉은 비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와 인재가 많이 배출됐다는 장원봉이 있어 구미시민들이 편하게 산책 겸 등산하기 좋아 여가를 이용, 자주 찾는 산이다.특히 봉황과 관련된 전설이 많은데다 조선인재가 많이 배출된 것도 비봉산의 영향이라고 믿고 있다.이러한 산의 모양으로 봐서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는 옛말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마을을 개척할 때 새와 연꽃이 많아 연봉(蓮鳳)이라 했다.비봉산의 봉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영봉(迎鳳)이라 하기도 했으며 조선 초기 전가식, 김숙자, 김치, 하담, 정초, 유면, 하위지, 정지담 등 많은 인물이 이 마을에 살면서 과거에 장원급제 또는 부장원을 했는데 선산의 한 작은 마을 연봉리에서 장원급제를 가장 많이 해 장원방(壯元坊)이라 부르게 됐다.조선 세종 때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와 영조 때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인재반재영남 영남인재반재선산’이라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인물 중 반은 영남 지방에서 났고 영남 인물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는 말이다.이 또한 영봉리에서 많은 선비 학자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비봉산은 사방이 마을로 둘러싸였으며 남쪽으로 국도 59호선과 선산 앞들이 보인다.옛 위치와는 다르게 이문리 일대를 장원방(영봉리)라 해 일체감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선산여자중학교 뒷산을 장원봉(壯元峰)이라 부르며 이문리와 노상리가 연결되며 일대에 장원1길~6길이 있다.봉황(鳳凰)은 전설상의 상스러운 새로 생김새는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 등을 하고, 키는 6척 가량이다.목과 날개에는 5색 빛 찬란하고 다섯 가지의 울음소리를 내며 성품이 어질고 청결해 나는 새 가운데 왕이라 칭한다.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신성한 물만 마시고 산다고 하며 성인군자가 나야만 이 새가 나타나는데 용, 거북, 기린과 함께 사령(四靈)이라는 전설의 새라 한다.지리학설에 의하면 비봉산은 봉황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에 날으려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동쪽으로는 교리 뒷산, 서쪽으로는 노상리 뒷산이 있어 두 날개이며 선산출장소(구 선산군청사)뒤의 봉우리가 몸과 모가지가 된다.가운데의 봉우리 아래에 구 선산군청이 자리잡고 있어 봉의 입이 군청사를 문 것과도 같다 한다.나르는 것일까?날으려는 것일까?늠름한 기상, 수려하고 장엄한 기상은 정말 선산의 진(鎭)산이요, 산중의 산으로 명산이며 산의 조종(祖宗) 임에 틀림이 없다.비봉산은 북쪽에서 금오산은 남쪽에서 서로 안을 지키고 감천은 동으로 흘러 낙동강과 이어져 외부를 지키면서 아주 튼튼한 천연의 성을 이뤘다.그러나 선산 읍민들에겐 큰 걱정이 있었다.비봉산의 봉새가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그래서 고아읍 황당산에 그물을 쳐놓고 동네 이름을 망장(網張)이라 했으며 물목동네 뒷산을 황산(凰山)이라 이름지어 짝을 맞춰주기도 했다.그것은 봉(鳳)의 수컷이요 황(凰)은 암컷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선산읍 사방동네를 죽장(竹杖)이라 해 대나무를 심어 대나무 열매로 먹이를 대어주고 화조리(花鳥里) 또한 봉황을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만화백조(萬花百鳥)가 있다는 뜻이며 동리 이름을 영봉리(迎鳳里) 영봉루(迎鳳樓)라 한 것은 봉황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며 무래리(舞來里) 역시 봉황이 날아오는 것을 뜻한다. 그 뿐만 아니라 봉황은 알을 다섯 개를 낳는데 한 개는 이미 앞들에 있는 동산이므로 다시 네 개의 동산을 만들어 다섯 개의 동산이 되게 했다.이것은 이 다섯 개의 알을 봉황이 품고 영원히 깃들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이 다섯 개의 동산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허무러져 1966년 경지정리에 따라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한 개의 동산만이 남아 있다.한편, 임진왜란때에 명나라 장군이 이 산을 보고 인재가 많이 날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비봉산 주령 허리를 끊고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큰 쇠못을 꽂았다고 전해 온다.등산로는 1코스와 2코스가 있다.1코스는 선산출장소 뒤편 충혼탑을 거쳐 잘록허리-영봉정까지 1.2km-부처바위(3.2km)까지 1시간-형제봉(정상)-선산여자종합고등학교(5.8km) 뒷편까지 3시간이 소요된다.2코스는 부처바위에서 임도(선산-옥성간, 3.5km)까지 총 1시간10분-뒷골 체육공원(4.1km)까지 2시간이 소요, 대부분 경사도가 완만해서 걷기 아주 편하다.교통은 구미역에서 시내버스 1번과 110번이 2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구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직행버스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구미에서 선산읍까지 30분이 소요된다. 숙박시설은 선산읍에 여관 4개소, 호텔 1개소가 있으며 식당은 읍내 대중음식점이 많이 있으며, 일선교 주변에 매운탕과 장어 점문점이 있다.구미=김기환 기자 khkim51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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