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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과 흥' 복수보다 더 무섭다

김경태 기자 입력 2024.10.22 12:29 수정 2024.10.22 12:38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한(恨)이란 어학사전에는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며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했다. 한은 욕구와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등과 그에 처한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 무의식적으로 복합체를 가르키는 민간 용어로 응어리를 말한다. 이어령은 "원의 문화는 빚이나 은혜를 갚는 문화인 반면, 한의 문화는 갚는 것이 아닌 푸는 문화다. 한이 풀릴 때 신바람이 난다"고 하였다.

김열규는 "외로움 같은 한, 서러움 같은 한, 허전함 같은 한, 괴로움 같고 슬픔 같은 한, 서정인가 하면 비참하기도 한 한, 사위움이면서 처절한 아픔인 한, 뉘우침이 엉켰는가 하면 원망이 서린 한 등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민요에 보면 "어매 어매 우리 어매/뭘 먹고 날 맹글었나/ 우리 어매 날 날 적에/죽순 나물 먹었던가/ 마디 마디 6천 마디/ 마디 마다 설움이네" 가난에 시달리고 계급에 밟히면서 응어리가 된 한을 풀어줄 힘이 없는 어매인 줄 알면서도 자길 낳아 준 어매에게 넋두리를 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 속에는 원(怨)이나 분(憤)은 있어도 한이라는 말은 없다. 우리 민족은 외부로 부터 당한 극한의 고통과 슬픔을 내면화 하면서 그 원한을 해학과 흥으로 승화시켜 풀어낸다. 분노와 복수로 폭발하지 않고 처용처럼 관용의 춤으로 바꾸어 뿜어낸다.

흥(興)이란 재미나 즐거움이 일어나게 한 감정이다. 고려 문신 이규보는 "흥이 깃들이고 사물과 부딪칠 때마다 시를 읊지 않는 날이 없다(寓興觸物)"고 흥에 대해 말했다.

퇴계 이황은 "노래하고 춤추고 뛰게 해서 더러운 마음을 씻어버리고 느낌이 일어나 천지와 통하게 한다(感發融通)"며 감정을 발동시켜 가무로 수행을 하고 흥이 도를 찾아가는 방법임을 강조했다. 원효 대사도 설총을 낳은 후에 세속인의 옷을 입고 광대들이 노는 큰 박을 얻어 부락을 돌아다니며 노래와 춤을 추며 중생을 교화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삶의 현장에서 당하는 고통을 한으로 소화하고 그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타고난 천성을 지나고 있다.

역사적 사건과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 중에도 발견할 수 있다.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은 신분제로 정치권에서 소외되자 신선을 찾아 간다며 자연을 찾아 자신의 한을 시작을 통해 승화시켰다. 조선의 김 삿갓도 뜻을 펼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문전을 걸식하며 인생의 한을 시작문으로 풀면서 살았다. 천민으로 살면서 가슴에 맺힌 한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내며 유랑했던 광대와 무당이 있었다.

케이 컬쳐 한류가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기생충 영화, 오징어 게임, BTS가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일제 탄압 속에서, 북의 남침을 당하고 국토가 초토화되고 지구상 최빈국이 였던 코리아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면서 좌우 이념 내홍을 견디며 민주화 산업화를 진행해 10위권 선진국 대열로 성장의 기적을 이룩했다. 이 기적의 원동력이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다. 이 기적을 불러오는 힘은 다른 민족에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특성인 우수성이다. 온갖 침략과 시련 속에서 불사조처럼 살아 남았던 신비한 생명력이다.

이런 근본 원리를 종교적, 철학적, 정치적으로 해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전인수의 해석에 열중하는 것보다 이 기적의 동력이 국민을 통합하고 미래를 위한 추진력이 되고, 세계를 향한 강력한 확장력이 되게해야 한다. 어디서나 권력자에게 밟히고, 얻어 터졌을 때에 당장 칼을 들고 대들지 않고 분을 안으로 삼키고 한의 덩어리를 만들어 강력한 생명의 에너지로 바꾼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흥을 동반한 창조력으로 삶의 현장에 분출하게 한다. 그 것은 분노보다 더 두렵고 복수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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