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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세계적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 原 풀다

김창식 기자 기자 입력 2020.02.04 18:20 수정 2020.02.04 18:20

경주 타워 디자인 저작권자, 공식 명예회복
17일 ‘경주타워와 건축가 유동룡’ 현판식 거행
이 지사 결단, 표지판 설치로 12년 법정공방 종식

경주타워와 경주엑스포공원 전경.(사진=경주엑스포)
경주타워와 경주엑스포공원 전경.(사진=경주엑스포)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재일 한국인 건축가 故 유동룡 선생(1937~2011, 예명 이타미 준)이 황룡사 9층 목탑의 실루엣을 품고 있는 경주타워의 원(原) 디자인 저작권자로 대내외에 선포된다.

(재)문화엑스포(이사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오는 17일 건축가 유동룡 선생을 경주타워의 원 디자인 저작권자로서 명예를 회복시키고, 12년간 이어져온 긴 법적공방에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현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현판식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주낙영 경주시장을 비롯한 경북도 및 경주시 관계자, 유동룡 선생의 장녀 유이화 ITM 건축사무소 소장,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제작한 정다운 감독 등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타워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디자인 표절 등으로 상처 입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명예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주에서 가장 높은 경주타워는 지난 2004년 (재)문화엑스포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축물 설계 공모전’을 거쳐 2007년 건립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 들어온 로만글라스를 상징하는 유리와 철골구조로 만들어진 경주타워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실제높이 82m(아파트 30층 높이)로 재현해 음각으로 새겨 넣어 신라역사문화의 상징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故유동룡(이타미 준) 선생 모습.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故유동룡(이타미 준) 선생 모습.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공모전 당시 유동룡 선생의 출품작은 당선작이 아닌 우수작으로 뽑혔는데, 지난 2007년 8월 완공 후 경주타워의 모습이 유동룡 선생이 제출한 설계와 유사하다며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이후 5년간 계속된 법정공방 끝에 서울고등법원의 선고와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원 저작권자가 유동룡(이타미 준)임을 명시한 표지석이 2012년 설치됐다.

하지만 경주타워 우측 바닥 구석에 위치한 표지석이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 지난해 9월, 표시 문구의 도색까지 벗겨져 유동룡 선생의 유가족은 지난해 9월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을 진행했다.

이때 문화엑스포 이사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타워의 저작권 침해 소송과 관련한 일련의 내용을 보고받고, 원 디자인에 대한 인정과 적극적인 수정조치, 저작권자인 유동룡 선생의 명예회복 등을 지시하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면서 이번 현판식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철우 지사의 지시에 따라 엑스포 측은 바닥에 설치돼 있던 표시석을 곧바로 철거하고 유동룡 선생의 유가족과 새로운 현판 제작에 따른 내용 및 디자인 협의에 들어갔다.

이런 노력을 보이자 유동룡 선생의 유가족은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을 2019년 10월 취하했다. 엑스포 측은 유동룡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는 2021년에는 특별 헌정 미술전 등 추모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오는 17일 오후 1시30분 ‘경주타워와 건축가 유동룡(ITAMI JUN)’ 현판식을 통해 경주타워의 저작권자가 유동룡 선생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 같은 과정을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경주타워 앞에 새롭게 자리한 현판은 가로 1.2m, 세로 2.4m 크기의 대형 철재 안내판이다.

유동룡 선생의 건축철학과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2010년 일본 최고 권위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 등의 수상경력을 비롯해 제주핀크스 골프클럽 클럽하우스와 수ㆍ풍ㆍ석 박물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 대표작을 내용으로 기록했다.

지난해 개봉한 유동룡 선생의 일대기와 건축철학을 다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2019년 개봉)를 제작한 정다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아타미 준과 경주타워 이야기를 이슈화 시켰는데, 이번 현판식이 열리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것 같아 영광”이라며 “경주타워가 이타미 준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손 꼽히며 많은 이들이 경주엑스포와 경주타워 방문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현재 경주엑스포 이사장으로서 고인과 유가족에게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을 드린다”며 “앞으로 지적재산권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며 고유의 자산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기에 이번 현판식이 우리 사회전반에 만연한 표절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공모전 당시 이타미 준이 출품한 디자인안 야경투시도.(사진=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공모전 당시 이타미 준이 출품한 디자인안 야경투시도.(사진=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국적 초월, 세계가 인정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은 재일동포 2세 건축가로 본명은 유동룡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끝까지 일본에 귀화하지 않았다.

 ‘조센징’이라 놀림당해도 꿋꿋하게 유동룡이란 한국 이름, 한국 국적으로 대학교(도쿄 무사시공업대학 건축학과)까지 졸업했다.

하지만 한국이름으로는 취직이 되지 않았고 동네 카페, 식당 설계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유동룡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데 제약이 많자 절친한 작곡가 길옥윤의 예명인 요시아 준에서 ‘준’을, 그가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 올 때 이용했던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와 예명을 지었다.

공항에서 따온 이 예명은 자유로운 세계인으로서의 건축가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국에서는 일본인, 일본에서는 한국인 대우를 받는 경계인의 처지도 나타나있다.

유동룡 선생은 조국에 대한 애착을 아끼지 않으며 건축 장소와 공간에 대한 고찰을 우선했다. ‘건축이 여행이고, 여행이 건축’이라는 철학을 작업의 기초로 삼았다. 제주도와 경주, 안동 등 전국을 다니며 고전 건축물과 미술품을 탐구해 영감을 얻었다.

특히 경주는 그가 생전에 자주 방문한 곳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에도 불국사와 대릉원 등을 방문한 모습을 찍은 영상이 등장한다.

그는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개인전 제목은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로 기메 박물관은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 국적을 초월해 국제적인 건축 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극찬을 보냈다.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타미 준이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에 갇히지 않고 세계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 개인전을 계기로 2005년 프랑스 예술훈장인 ‘슈발리에’와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0년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그의 설계와 작품은 지역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적인 미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그가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긴 제주도에 핀크스 골프클럽 클럽하우스, 포도호텔, 수(水)ㆍ풍(風)ㆍ석(石) 박물관, 방주교회 등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쿠마 켄고는 “이타미 준의 작품은 인간적 정서가 담겨있고 진실함이 서려있다”며 “한번 완공하면 끝나는 건축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이야기를 생각하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공모전 당시 이타미 준이 출품한 디자인안.(사진 =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공모전 당시 이타미 준이 출품한 디자인안.(사진 =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경주타워 설계 공모부터 준공까지, 그리고 이어진 소송들
경주타워는 지난 2004년 (재)문화엑스포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상징건축물을 건립하기 위한 설계 공모전를 통해 2007년 세워졌다.

당시 공모전에 참가한 유동룡 선생은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징 타워가 들어가도록 하라’는 지침에 따라, 신라불탑을 음각으로 투영한 설계를 제출했다.

유동룡 선생이 엑스포 설계 공모전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은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의 권유와 추천이 힘을 더했다는 후문이다.

지역적 특성과 건축이 위치할 공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유동룡 선생은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타워 중심에 음각으로 새겨진 빈 공간을 통해 신라 건축문화의 상징을 표현하고 불타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의 모습을 되살리고자 했다.

해당 설계는 우수작으로 선정돼 상금 1,000만원을 받았고 최종 당선작에는 뽑히지 못했다.

그러나 2007년 8월, 유동룡 선생은 완공된 경주타워의 모습을 접한 제자를 통해 본인의 공모전 출품작과 경주타워가 유사하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다.

유동룡 선생 측은 2007년 10월,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사무소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형사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2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났다.

다음해인 2009년 6월에는 엑스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항소심까지 가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고 엑스포는 2011년 3월 유동룡 선생 측에 3,000만원 및 일정기간의 이자(1,200여만원)를 지급했다.

경주엑스포는 경주타워 건축과정에서 5차에 걸친 설계자문위원회를 거쳐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 처리하기로 결정하고, 당선작의 설계를 변경해 현재 모습의 경주타워를 건축한 것으로 당시 밝혀졌다.

법의 인정을 받은 ITM건축사무소(대표 유이화 : 이타미 준 장녀)는 이와 별도로 유동룡 선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2012년 2월 ‘건축물에 저작권자 성명을 표시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승소했다.

2012년 9월 법원은 ‘경주타워 우측면 하단 또는 바닥에 50cm x 50cm 이상 크기의 동판 또는 석판에 저작권자가 ITM건축연구소이며 설계자는 유동룡이라는 내용을 표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에서 저작권이 침해된 저작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성명 표지를 하라고 법원이 판결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경주타워 우측 바닥에 설치돼 있던 바닥 석판의 모습.(사진=경주엑스포)
경주타워 우측 바닥에 설치돼 있던 바닥 석판의 모습.(사진=경주엑스포)

◈경주엑스포, 새 비전 위해 거듭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명예를 실추시켰던 과오를 반성하고,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은 건축계나 사회 전반에서 볼 때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경주타워는 유동룡 선생의 상징성에 힘입어 100년, 200년 후에도 한국의 대표 건축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고인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경주타워를 잘 보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현판식을 통해 유동룡 선생이 경주타워의 원 디자인 저작권자로 선포되면 경주엑스포 공원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엑스포 공원은 경주타워를 비롯해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 다수 위치해 있어 아름다운 건축물 공원으로 더욱 사랑받게 될 전망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유명 건축가 ‘쿠마 켄고’의 작품이다. 쿠마 켄고는 2005년 마블 아키텍쳐상과 2007년 최우수 뉴 글로벌디자인상 등을 수상한 건축가이다.

신라 금관을 상징하는 노란색 철제얼개는 건물의 일체감을 형성하고 경주 주상절리와 왕릉을 조화롭게 디자인에 녹여내며 건축미를 인정받아 ‘2019 경주시 건축상’에서 특별상도 받았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솔거미술관은 ‘비움의 설계’를 추구하는 승효상 건축가의 역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한 승효상 건축가는 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미국건축가협회 명예상 등을 수상하며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이다.

솔거미술관은 아평지 호수 옆 언덕에 자연과 어우러지는 디자인과 건축방법으로 지어져 ‘건축물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작가의 지향점을 그대로 반영했다.

한국화 거장 박대성 화백의 웅장한 수묵산수화와 어우러지며 단연 경주엑스포 공원의 최고 인기 전시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14만6천명이 다녀갈 정도로 경주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신라문화를 비롯한 한국문화의 세계화와 문화예술 진흥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초의 문화박람회이다. 1998년 첫 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열린 ‘2019 경주세계문화엑스포’까지 7회의 국내행사와 베트남(2017)과 터키(2013), 캄보디아(2006) 등 3회의 해외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특히 지난해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통해 22년간 쌓은 인프라에 신라역사와 첨단기술이 융합된 독창적인 첨단미디어 콘텐츠를 더하며 365일 상시개장 운영으로 연중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김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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