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도덕적 위기는 무엇일까. 부정부패, 거짓말, 탐욕,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을 저지르고 책임지지 않는 태도다. 잘못하면 남의 탓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겉으로는 정의와 청렴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사익을 챙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 정반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인간상도 있다. 바로 이리(李離)와 석하(石奢)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2천여 년 전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史記) 순리열전(循吏列傳)에 함께 기록되어 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사마천이 두 사람을 한 대목에서 나란히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이리는 자신의 잘못된 판결 앞에서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李離伏劍). 진(晉) 문공 때 형옥을 담당했던 이리(李離)는 재판을 잘못하여 무고한 사람을 죽게 했다. 그러나 문공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려 했다. 잘못은 아래 관리에게 있으니 그의 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관리의 우두머리로 있으면서 권한을 아랫 사람과 나누지 않았고 녹봉도 더 많이 받았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고 그 죄를 아랫사람에게 돌린다면 옳지 않다(臣居官為長 不與吏讓位 受祿為多 不與下分利)” 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형벌을 잘못 내렸으면 그에 대한 형벌을 받고, 죽이지 않아야 할 사람을 죽게 했다면 자신도 죽어야 한다(失刑卽刑 失死卽死)"고 하였다. 결국 이리는 왕의 사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칼에 엎드려 죽었다(伏劍而死). 이리는 우리에게 "권한은 내가 행사하고 이익도 내가 누렸는데 왜 책임만 남에게 떠넘기는가?"라고 묻고 있다.
석하는 아버지와 법 사이에서 자신이 대신 벌을 받았다(石奢自責). 석하는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재상으로 사기에는 그를 “堅直廉正, 無所阿避”, 즉 굳세고 곧으며 청렴하고 바르며 누구에게도 아첨하거나 피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어느날 석하는 지방을 순행하다 살인범을 발견하고 추격했다. 그런데 범인을 쫓아가 보니 놀랍게도 자신의 아버지였다. 여기서 석하는 인간으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 앞에 놓였다. 아버지를 잡으면 효를 저버리게 되고, 잡지 않으면 법을 어기게 된다. 석하는 결국 아버지를 놓아 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돌아와 스스로 몸을 묶었다.(縱其父而還自繫焉).、그리고 왕에게 자신의 죄를 고했다. "살인한 사람은 저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효가 아니며, 법을 폐하고 죄인을 놓아 주는 것은 충이 아니니 신의 죄는 마땅이 죽음에 해당한다(殺人者 臣之父也 夫以父立政 不孝也 廢法縱罪 非忠也 臣罪當死)”
그러나 왕은 석하를 용서했다. “그대는 범인을 추격했으나 잡지 못했으니 죄가 없다. 다시 직무를 수행하라.” 그러나 석하는 왕의 명령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임금의 은혜이고 자신이 처벌받아 죽는 것은 신하로서의 직분이라는 것이다(王赦其罪 上惠也 伏誅而死 臣職也)" 그리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고사의 석하자책(石奢自責)은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 묻는다’는 현대적 의미로 만든 고사성어 조어다. 석하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단순히 법을 지켰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왕이 '죄가 없다'고 했는데도 자신의 책임을 주장했다.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벌을 받기위해 자신을 죽였다.
오늘날 이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가. 이리와 석하의 반대편에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 자신이 결정하고도 책임은 부하에게 넘기는 사람. 자신이 혜택을 누리고도 손실은 조직에 떠넘기는 사람. 자신의 가족이나 측근이 잘못했을 때는 눈감으면서 남의 잘못에는 엄격한 사람. 겉으로는 청렴을 말하면서 뒤에서는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고,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표리부동(表裏不同)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들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도덕사회를 위기에 몰아 넣고 있다.
그러나 거짓은 진실을 영원히 이길 수 없다. 권력으로 진실을 덮을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돈으로 입틀막을 할 수는 있어도 양심과 역사의 기록까지 없앨 수는 없다. 오늘날에는 문서와 금융자료, 통신기록, 영상 등 수많은 정보의 기록으로 인해 과거보다 갈 수록 은폐의 수명이 짧아지는 시대다. 사마천이 두 사람을 함께 기록한 이유와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순리열전의 마지막에서 석하와 이리를 함께 언급했다. "석하는 아버지를 놓아주고 죽었으며 초소왕의 이름을 세웠고 이리는 잘못하여 사람을 죽게하고 칼에 엎드렸으며 진 문공은 이로써 나라의 법을 바로세웠다 (石奢縱父而死 楚昭名立 李離過殺而伏劍 晉文以正國法)” 사마천이 주목한 것은 단순히 두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관리가 나라의 법과 신뢰를 바로 세운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다. 사회는 법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정직해야 하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며, 시민이 서로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이리복검과 석하자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칼을 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살아서 책임지는 것이다. 공직자가 잘못했다면 사과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인이 잘못했다면 손실을 남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만 정직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직해야 한다. 지도자는 성공했을 때만 자신의 공으로 돌리지 말고 실패했을 때 먼저 자신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은 아래로 돌리고 책임은 위에서 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다시 세워야 할 선비정신은 과거의 신분제적 선비가 아니다. 오늘 되살려야 할 선비정신은 청렴과 염치, 지조, 책임, 절의다. 돈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고, 권력보다 양심을 귀하게 여기며, 이익보다 원칙을 앞세우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러움을 아는 정신이다. 이리는 잘못된 판결 앞에서 칼에 엎드렸다. 석하는 아버지를 놓아준 뒤 스스로를 묶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상황에 있었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같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책임 회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심 앞에 자신을 세우는 용기다. 나는 잘못했을 때 인정하는가. 나는 내 이익을 위해 원칙을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나에게는 관대한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는 떳떳한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때 사회는 밝아진다.
이리복검과 석하자책은 자기책임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 정신의 뿌리에는 청렴과 염치가 있다. 이리와 석하는 자기 잘못과 아버지의 죄를 대신 지고 자기 목숨을 끊었다. 오늘 우리가 되살려야 할 것은 옛사람의 죽음이 아닌 책임 정신이다. 칼 대신 양심을 들고, 변명 대신 책임을 지고 탐욕 대신 청렴을 선택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과 책임지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2천여 년 전 이리와 석하가 오늘의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엄중하고도 아름다운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