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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조령모개(朝令暮改)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4.26 17:52 수정 2020.04.26 17:52

배 해 주
수필가

아침 朝 명령 令 저녁 暮 고칠 改
한나라 문제(文帝) 때 조조가 상소한 논귀속소(論貴粟疏)에 나오는 말이다. 아침에 법령을 내렸는데 저녁에 고친다는 것이다. 법률이나 규칙은 한번 정하면 지속해서 지켜져야 하는데 너무 자주 뜯어고치면서 이랬다저랬다 할 때 쓰이는 말이다.
“지금 다섯 명의 식구가 있는 농가에서는 부역(賦役)이 과중하므로 부역에 따르는 자가 두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경작의 수확도 백 무(이랑 畝)가 고작으로 백 무의 수확은 기껏해야 백 섬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부역에 징발되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쉴 날이 없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를 기르고 병자를 위로하는 등 일이 많습니다. 게다가 홍수나 가뭄의 재해를 당하게 되면 갑자기 조세와 부역을 강요당합니다. 시기를 정하여 세금과 부역을 내지 않으니, 마치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는(朝令暮改)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논밭과 집을 내놓거나 자식을 팔아 빚을 갚는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淸)나라의 왕념손(王念孫)은 ‘조령모개(朝令暮改)’가 아니라 ‘조령모득(朝令暮得)’, 즉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거두어들인다로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맥에 비추어 볼 때 왕념손의 주장이 옳은 것 같지만, 어쨌든 ‘조령모개’는 ‘법령을 이랬다저랬다 자주 고치는’ 뜻으로 관용적으로 쓰이고 있다.
법령이나 규칙 지시가 일관성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평온한 시기도 물론이지만 혼란한 시절일수록 더 그렇다. 국가적 난제를 앞에 두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일관성 없는 법령, 규칙, 지시는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다. 그래서 불안해지는 국민은 국가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려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 안전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정부를 보면서 국민은 왠지 불안해하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가 발병했을 때 글자 그대로 담 너머 남의 집 처다 보듯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그렇 수 있다고 해도,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30번 확진자까지는 국민에게 “손을 깨끗이 하고, 마스크만 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국민 예방 수칙을 말했다.
그리고 지도자나 관료들이 마스크를 한 체 회의하고 현장을 누비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또 한 전염병 관련 최고 책임자가 브리핑 할 때도 똑같은 말로 국민을 계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위정자는 이제 전염병은 곧 잡히고 우리는 어려운 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모으자고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코로나 확진자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보이고,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국민은 덩달아 불안해졌다. 스스로가 전염병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데 그렇게 필요하다던 마스크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수요가 공급을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스크가 꼭 예방에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말로 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그러면 국민은 더 불안해진다. 처음부터 확인하지 않고 임시처방식 행정이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국민을 안심시키고 지키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조령모개식의 지시는 그래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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