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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와신상담(臥薪嘗膽)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5.18 18:44 수정 2020.05.18 18:44

배 해 주
수필가

누울 臥 섶 나무 薪 맛볼 嘗 쓸개 膽
사기의 월세가(越世家)에 실려있는 말이다.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는 뜻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딤을 말한다.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절강성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임종 때 합려는 아들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한 후 죽었다.
그 후 오왕이 된 부차는 아버지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 방문 앞에서 아버지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아버지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기필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원수를 갚겠습니다” 이처럼 밤낮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蠡)가 말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정략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에게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충신 오자서(伍子胥)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嘗膽)을 느끼며 치욕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여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12년이 지나고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진격했다.
마침내 구천은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절강성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霸者)가 되었다.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오랜 시간 와신상담 권토중래(捲土重來)한 정치인들이 칼을 갈았다. 4년 전에 쓰디쓴 패배의 잔을 마신 사람이 있다. 반대로 그때 승자는 달콤한 권력의 맛에 취해 훌쩍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특정 지역구에는 두 사람이 한번은 이기고 한번은 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두 번 지는 사람도 있다. 반면 두 번, 세 번 이기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패자 때의 아픔을 오래 간직하며 자신과 지역구를 관리해온 사람이다. 와신상담의 쓴맛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고 권력에 취해 지난 아픔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은 다시 패배의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 패했을 때 쓴맛을 오래 기억한 사람은 승자에서 다시 승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힘겹고 아픈 지난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시간을 잘 견디고 이기는 사람이 승자다. 굳이 정치인이 아니라도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패하지 않고 이기는 승자의 길을 희망하고 있다.
그 승자의 길에는 와신상담의 지난 시간을 뼈아프게 느낀 사람은 오랫동안 승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짧은 행복만이 스쳐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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