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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면목(面目)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5.24 17:48 수정 2020.05.24 17:48

배 해 주
수필가

얼굴 面 눈 目
사기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실린 글로서 글자 그대로 얼굴과 눈인데, 얼굴을 들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으로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인다.
해하성에 갇혀서 이별의 주연까지 마친 항우는 날이 밝자 8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어 탈출했다. 한나라 군사는 곧 그를 추격했다. 쫓기는 과정에서 항우의 군사는 점점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28명만 남았다. 항우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전투를 지휘했지만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지금 내가 이 지경이 된 것은 하늘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지 내가 싸움에 약해서가 아니다. 그 증거를 보여주리라”
그리고는 적진으로 돌진하자 한나라 군사들은 두려워서 접근하지 못했다. 적장을 베어 버린 항우는 다시 동쪽으로 도망가 오강(烏江)을 건너려 했다. 마침 배를 대기 시켜 놓고 기다리던 사람이 말했다.
“강동 땅이 좁다지만 사방 천 리나 되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충분히 왕 노릇을 할만한 곳이니 빨리 건너십시오. 한나라 군사가 닥치면 건널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항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이 나를 버렸는데 내 어찌 건너겠는가? 나는 전에 강동 땅의 8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네. 그런데 지금 그들은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했네. 설사 강동의 어른이나 형제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는다 해도 내 무슨 면목(面目)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그들이 아무 말 않는다 해도 나 자신은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네”
항우는 다시 한나라 군사와 최후의 일전을 벌여 수백 명의 적군을 섬멸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쳐서 죽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사건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고도의 보안 장치가 생명인 텔레그램에서 각자의 방을 만들어 놓고 몹쓸 영상을 올리고 공유한 사실이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주범에 대해서는 청와대 국민 청원란에 5백만 명이란 많은 사람이 피의자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하라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국민 10명 중 1명이 참여한 것이다. 여론의 힘으로 얼굴과 신상이 공개된 것을 보고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25살이란 많지 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일을 벌였나?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오프라인상에서는 봉사 활동과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등 거의 모범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대학 시절에도 모범생이었던 그가 인간의 탈을 쓴 위선자로 밝혀졌다.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는 순간에도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국민을 현혹하기도 했다.
사법기관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영상을 올리고 공유한 사람들을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수만 명의 가입자가 안절부절하고 있다. 혹자는 한강에 투신하기도 하고,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죄를 어떻게 하면 모면할 것인가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 발표되자 몇 사람은 지레 겁을 먹었는지 자수하는 것을 보면 짓은 죄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옛 어른들은 어두운 밤이나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을 경계하고 마음의 일탈을 삼가라는 말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세상에 나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많고, 면목 없는 사람보다 바르고 떳떳한 면목 있는 사람이 그래도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른이 얼굴을 들 수 없는 면목 없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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