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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IT프리즘] 인터넷 성역의 ‘3가지 신화’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5.27 18:34 수정 2020.05.27 18:34

이 성 엽 교수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최근 몇 가지 인터넷에 대한 규제이슈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먼저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한 사전억제를 위해 국회는 지난 21일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포털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불법촬영물 등의 온라인 유포에 대한 사전 방지를 위한 기술적, 관리적 조치의무를 부담하도록 했다. 또한 넷플릭스를 비롯한 국내외 CP에게도 일정한 이용자 보호 의무로서 서비스 안정화 수단을 확보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통과되었다. 그 외에도 재난 발생 시 데이터 소실을 막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사에 집중된 재난관리 대책을 민간 데이터센터 사업자까지 확대하기 위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도 논의되었다. 다만, 이 법안은 중복규제라는 이유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3가지 법안 모두에 대해 인터넷 기업은 “사적 검열이다. 국내 사업자만 규제한다. 중복규제다”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과연 인터넷 공간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인가.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는 논거를 제공하는 다음 3가지 신화가 있다.
첫째 신화는 인터넷은 규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신화이다. 원래 인터넷은 각기 자율적인 PC 네트워크의 상호 간을 접속시키는 글로벌 네트워크로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이며, 누구나 진입, 퇴출이 자유로운 자율적이고 개방된 분권형 네트워크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이용자 간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단일한 관리 주체가 존재할 수 없어 전통 미디어와 달리 국가의 통제가 어렵다. 방대한 정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의사소통의 익명성 등으로 인해 인터넷에 대해서는 불간섭이 진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인류의 오프라인 생활을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가 인터넷 공간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인터넷은 가짜뉴스, 명예훼손, 성범죄는 물론 다양한 불법행위의 장이 되고 있는데, 문제는 온라인의 은밀성과 즉시성으로 인해 불법행위의 형태나 수준이 심각한 상황이며 개인이나 사회가 입는 피해의 규모나 범위도 막대하다는 점이다.
이제 전체 사회공동체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인터넷 기업이 일정한 사회적, 법적 책임을 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이런 규제가 그동안 인터넷이 가져온 신기술이나 신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혁신성을 저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신화는 인터넷 사업자는 통신사나 방송사에 비해 약자라는 것이다. 인터넷 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과 달리 대규모의 시설이나 자산 없이 혁신적이면서 역동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벤처기업으로 출발하였다. 주로 통신사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이용한 콘텐츠 비즈니스, 수많은 이용자와 공급자를 매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성장하면서 이제 인터넷 기업은 매출은 물론 기업가치에서도 전통적인 제조업, 통신사, 방송사를 앞서가고 있다.
미국의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와 중국의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인터넷 기업은 이미 제조업을 넘어 전 세계시장 석권을 목표로 경쟁하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의 1위는 마이크로소프트 (1조4,160달러, 약 1,737조1,488억원)이고,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알리바바, 페이스북 등 인터넷 기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5월 20일 기준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각각 37조, 21조로, 20조인 현대자동차를 넘어섰고 KT, SKT, LG유플러스 통신 3사의 시가총액이 각각 6조 5천억, 17조, 5조 9천억 원으로 3사를 합쳐도 네이버를 넘어서지 못한다.
셋째 신화는 해외 사업자를 규제할 수 없으면 국내 사업자도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 집행권을 포함한 국가의 주권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영토 내에 있는 개인과 기업에만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외국에 소재하면서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기업에 대해 각국이 법 집행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법을 적용한다는 취지의 ‘역외적용’ 규정과 국내에 주소나 영업소가 없는 해외 기업이 국내에 법률 대리인을 지정하게 한 ‘국내 대리인’ 제도가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도입됐다. 물론 역외적용 규정만으로는 집행력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 간 사법공조와 국내 대리인 제도를 활용하면 상당한 실행력 확보도 가능하다.
인터넷이 가지는 혁신성, 플랫폼적 특성, 글로벌적 특성은 인터넷 산업의 혁신을 통한 성장이라는 결실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작용과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규제의 필요성도 증가시키고 있다. 다만, 인터넷에 대한 규제와 정책의 목표는 폐해를 제거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즉, 인터넷의 혁신성을 실현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한편, 인터넷 기업은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그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에 경도되었던 초기 자본주의의 위기도 복지정책, 노동정책 등을 통한 국가의 규제와 기업의 협력으로 극복되었듯이 인터넷 시대에도 국가와 인터넷 기업의 협력 메카니즘이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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