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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배수진(背水陣)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5.31 18:19 수정 2020.05.31 18:19

배 해 주
수필가

등 背 물 水 진 칠 陣
등 뒤에 강이 있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뜻이다. 등 뒤에 강이 있으면 군사는 물러날 곳이 없음으로 사력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건 결사 항전을 배수진을 친다고 한다. 사기의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에 실려 있다.
한나라와 초나라가 패권을 다툴 때다. 한나라가 팽성(彭城)에서 초나라에 패하자, 다른 제후국들이 초나라를 가까이하려 했다. 그러자 한고조 유방은 한신을 시켜 이 제후국들을 징벌케 했다. 한신은 위(魏)나라를 정벌한 후, 조(趙)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조나라를 치려면 정경(井徑)이라는 좁은 길을 지나야 했다. 이때 조나라의 이좌거(李左車)는 함안군(咸安君)을 이렇게 설득했다.
“한신의 군대는 식량을 천 리 밖에 있는 본국에서 실어 옵니다. 그런데 정경의 길은 너무 좁아서 일렬로 지나갈 수밖에 없으니 식량을 운반하는 부대는 자연히 뒤쪽으로 처지게 됩니다. 나는 기습부대를 이끌고 이 부대를 차단할 것이나 당신은 진지를 지키면서 적과 싸움은 하지 마십시오. 그리하면 적은 식량 보급이 끊겨 자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함안군은 정면 대결을 원했다. 결국 한신은 1만 명을 먼저 진군시켜 매복시킨 다음 강을 등지고 진을 쳤다.(背水陣)
조나라 군대는 이 광경을 보고 한신을 병법을 모르는 자라고 비웃었다. 날이 밝자 한신의 군대는 정경 입구에서 적을 유인하여 강가의 군대와 합류한 다음 결사적으로 조나라의 군대와 싸웠다. 초나라 군대는 이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한신의 군대를 쉽게 이기지 못했다. 그 사이에 한신이 매복해 놓은 병사가 조나라 성을 함락하고, 여세를 몰아 조나라 군사를 격파했다. 함안군은 죽고 이좌거는 포로 잡혔다. 한신은 이좌거를 동쪽에 앉히고 자신은 서쪽에 앉아 이좌거를 스승의 예로 대했다.
싸움이 끝난 뒤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을 등지거나 오른쪽을 끼고, 강을 등지고 싸웠는데 이것은 어떤 병법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병법에 군사를 사지에 빠뜨려야 사는 길이 있으며 군사를 반드시 절망적인 상황에 놓아야 살아남는 길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나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을 데리고 싸워야 했다. 그래서 군사를 사지에 내몰아 스스로 결사 항전토록 할 것이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하도록 자신을 채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합격이란 목표를 둔 수험생이 그렇고, 기록을 단축해야 하는 운동선수도 그렇다. 어떤 경우라도 되면 다행이고, 안되면 그만 이란식의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뜻한 바를 이루기가 어렵다.
유명한 유도 금메달 선수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연습을 하면 패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연습하면 이긴다”고 했다.
바로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등 뒤에는 강으로 물러설 수 없을 때 즉, 배수진을 칠 때 그만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가 끝났다. 정치인에게는 최고의 싸움판이다. 어떻게 배수진을 치고 싸울 것인지? 뒷골목의 망나니 같은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주권자인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는지가 관건이다. 유권자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쁨까지도 함께 하는 참 배수진을 치는 사람이 선택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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