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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최고 아빠를 꿈꾸는’ 농구장 아재들

뉴시스 기자 입력 2017.01.03 16:56 수정 2017.01.03 16:56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주희정(39)이 사상 첫 정규리그 통산 1000경기 출전을 눈앞에 뒀다. 대학교 중퇴에, 연습생 신분으로 어렵게 뛰어든 프로 무대에서 20년째 버텼다. 나래(현 동부) 유니폼을 처음 입은 1997년은 '밀레니엄 버그(컴퓨터가 2000년 이후를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라는 말도 생소하던 때이니 정말 오래됐다. 주희정은 "깡, 독기, 근성으로 버텼다. 농구를 잘할 수 있다면 뭐든 했다. 20년을 버틴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왜, 가족 때문이다. 주희정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농구를 시작했다. 농구화 한 켤레 사는 걸로 깊이 고민했던 요즘 말로 '흙수저'다. 때문에 아내와 자식, 가족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다. 주희정은 딸 셋, 아들 하나를 뒀다. 자신은 누리지 못한 것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입만 열면 자식 얘기다. 진로부터 건강, 교육 등 참 궁금한 게 많은 전형적인 40대 '아재(아저씨)'다.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훌륭한 사람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고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농구장에는 주희정 같은 아재들이 많다. 코트 안에서 인정사정 보지 않는 감독, 선수부터 이들을 지원하는 프런트 직원까지 매한가지다. 모 감독은 자식의 대학교 진학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들이 수의사 꿈을 이루겠다며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사관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설득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다. 아들은 재수했다. 또 다른 감독은 딸의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강남 아재'가 됐다. 억대 연봉을 받지만 갑자기 강남 한복판으로 이사를 가려니 적잖게 부담이었다. 틈나는 대로 딸의 등하교를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한 구단 직원은 방학 때마다 중학생 아이들을 믿고 맡길만한 영어캠프를 알아보기 위해 이쪽저쪽 수소문한다. 다른 직원은 대학생 딸의 연애 상담가다. 딸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연애하듯 흐뭇해한다. 최근 딸이 결혼한 한 원로 농구인은 "딸에게 충분히 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상대적으로 벌이가 못한 한 아마추어 지도자는 아이 양육에 보태기 위해 부인이 운영하는 조건으로 식당을 차렸다가 망했다. 통장에 월급이 찍히는 대로 빠져나가는 '기러기 아빠'도 많다. 소위 '먹고 살만하다'는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다. 모두가 최고 아버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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