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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로나 시대, 21대 국회에 진중한 거리감 요청하며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7.29 18:42 수정 2020.07.29 18:42

이 채 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누군가가 내 모든 행동과 움직임, 생각에 명령을 내린다.…나는 외출하고 싶다. 하지만 그가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집 안에 머물러 있다. 그가 나를 붙잡아 앉혀둔 안락의자 위에서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면서. 나는 일어나고 싶다. 몸을 일으키고 싶다. 내가 아직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단편소설 ‘오를라(Le Horla)’(최정수 역)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괴생명체 오를라에 대한 두려움을 일기장에 적었다.
얼마 전 출장길에 마스크를 쓰고 기차에 앉아 손소독제로 좌석 팔걸이를 닦다가 ‘오를라’가 떠올랐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를라처럼 일상을 뒤흔드는 코로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pandemic)을 훌륭하게 관리하고 무사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냈다. 20대와 21대 국회가 교체되는 시기에도 정부와 국회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의결하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토록 내 나라가 든든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코로나 시대, 학계와 언론·출판계의 활약도 눈부시다. 다양한 분야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변화를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대체로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의 비대면 서비스 확대, 개인과 국가 차원에서의 사회구성원에 대한 통제 수준의 합의, 국가와 국가 차원에서의 자국우선주의 등이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변화를 추동하리라고 전망한다.
누군가는 낙관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비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이 언제, 어떻게 실재(實在)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변화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어지러운 현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과 크기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저 코로나 시대의 특징이 코로나 이전 시대의 사회적 기반과 다채로운 화학반응을 일으키리라는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암묵지(tacit knowledge)에 기반한 상상의 산물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당장 맞이하게 될 실재가 칠흑 같은 어둠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멈춰선 세계경제가 꽤 오랫동안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오를라처럼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한밤중 정전된 집에서 벽과 가구를 짚어가며 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암흑 속에서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알고 있는 사실들을 토대로 침착하게 주어진 정보를 해석하고 한걸음 한걸음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떼어야 한다는 것을.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이다. 어스름하게 비치는 가구들의 윤곽에만 의존하여 마음 놓고 움직이다가는 모서리에 부딪혀 다칠지도 모른다.
정책실험(policy experiment) 또는 사회실험(social experiment)이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정책의 전면적인 추진에 앞서 일부 정책대상에게 해당 정책을 시행하여 정책의 효과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에서처럼 실험집단(정책 시행)과 비교집단(정책 미시행)을 설정하여 정책집행의 순효과(net effect)를 파악함으로써 정책의 효율성 및 효과성을 극대화하는 데 참고한다. 그러나 정책은 사람의 문제라 실제로 실험집단과 비교집단을 나누어 사회실험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다양한 계량기법을 활용하여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정책실험 상태를 설정하여 정책효과를 추정한다.
이때 분석모형의 실험집단과 비교집단은 통제불가능한 사건의 이전과 이후 또는 특정 정책의 도입 이전과 이후를 기준으로 동일인구집단 혹은 동질성이 담보된 복수의 인구집단으로 설정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에게 다양한 정책의 효과를 파악할 수 있는 의도치 않은 정책실험의 기회를 준 것이다.
정치인과 행정가에게 묻는다. 그동안 무엇에 기대어 정치와 정책을 대하였는가? 부드럽게는 암묵지에 기반한 상상력, 거칠게는 뇌피셜(뇌(腦)와 오피셜(Official, 공식 입장)의 합성어로,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사실이나 검증된 것처럼 말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아니었나?
단순하고 모든 것이 투명한 사회의 정치와 정책은 뇌피셜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너무나도 복잡하여 잠시 물러서 고민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잘 알고 있다, 어서 오를라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마음.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를 관리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초유의 바이러스 확산에 맞선 효과적인 대응책은 한발짝 물러서 거리를 유지하며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차분하게 다음 걸음을 떼는 것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사회문제에 대응하여 기본소득 도입,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 등의 정책의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의 경험과 암묵지와 상상에 기반했을 때에는 지극히 타당한 귀결이다.
전 국민이 근로능력 유무와 무관하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리하여 고용주와 근로자가 고용계약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정책적 대응이다.
그러나 우리는 암흑 속에서 기존의 정책들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 놓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걸어야 한다. 잠시 마음을 다잡고 거리를 두자. 곧 우리는 기본소득의 닮은꼴인 긴급재난지원금이 기존의 정책집행 결과들과 상호작용하며 어떤 실질적인 효과를 냈는지 파악하게 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실업 양상을 비교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기법을 활용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의 효과를 추정하게 될 것이다. 암흑 속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걸음도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독일의 고전 사회학자 베버(Max Weber)는 1919년 뮌헨대학교의 학생 집회에서 ‘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전성우 역)라는 강연을 했다. 그는 정치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질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이라고 강조했다. 그 중 균형감각이 코로나 시대의 정치와 정책에 던지는 의미가 묵직하다.
정치와 정책이 오를라와의 거리감에 익숙해짐으로써 우리의 모든 행동과 움직임, 생각의 주인이 다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21대 국회가 진중한 거리감에 기반한 균형감각으로 대한민국을 일으켜주기 바란다. 제21대 국회의원들과 균형감각에 대한 베버의 통찰을 나누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균형감각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서 모든 정치가의 가장 큰 죄과 가운데 하나입니다.…정치에 대한 헌신은…열정에서만 태어나고 또 열정에서만 자양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적 정치가의 특징인 강한 정신적 자기 통제력은 거리감에 익숙해짐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정신적 자기 통제력이 그를 단순히 비창조적 흥분에만 빠져 있는 정치적 아마추어들로부터 구별하는 자질입니다”
-베버(1919), ‘직업으로서의 정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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