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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선출 권력’과 ‘위임 권한’의 긴장…민주주의 강화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8.02 18:05 수정 2020.08.02 18:05

조 인 영 부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코로나 시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유명해진 행정기구로 질병관리본부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2003년 설립된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과 만성질환 등의 방역, 검역, 조사업무를 수행하는 약 900여 명으로 이루어진 보건복지부 산하의 행정조직이다. 대규모 감염병의 유행은 질본이라는 약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작은 기구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 필요성에 대해 대다수가 인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질병관리청으로의 승격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이어졌다.
이 작지만 중요한 행정기구가 실질적으로는 봉쇄와 같은 강제력을 지니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과 감염병 전문가들의 전문적 판단이 실질적으로는 선출직 정치인들의 의사결정보다 뒤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당수의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반면 현실 경제의 운용과 정치적 여건을 더욱 고려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감염병은 하나의 큰 변수이되 모든 것일 수는 없기에 이들의 종합적 의사결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행정부처 중에서도 평소 국민들이 직접 방문하거나 연락할 일이 없는, 그 존재를 인지하기 어려운 기관들이 있다. 중앙은행이나 감사원,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나 금융위원회 등의 각종 합의제 규제기구들을 통칭해 흔히 독립행정기구라 부른다.
독립위원회 조직까지 합하면 한국에는 상당수의 독립행정기구가 존재하는 셈이다. 독립행정기구의 설립과 관련한 여러 행정학, 정치학 이론이 있지만 상식선에서 이해하자면 독립행정기관은 그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을 때 비로소 공익과 그 조직의 미션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설립된다.
다만 다양한 기존 연구들은 한국의 다양한 독립행정기구들이 지속적으로 정권과 정치권의 영향을 받아왔고 그에 따라 그 역할이 오락가락하며 조직의 근본 미션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행정국가의 강력한 전통을 가진 한국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행정기구를 중심으로 행정적 효율성을 주로 추구해왔다. 이는 효율적 관리, 감독을 표방한 규제적 행정권이 의회를 중심으로 한 민의의 반영이나 민주적 가치보다 선행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20여 년이 흐른 현시점에서는 행정부의 관료적 효율성보다는 관료와 정치인의 대표성과 책임성, 민주성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립행정기구의 존재는 어쩌면 민주주의와는 상당 부분 상충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국가의 시민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즉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획득하지 않은 기관이 국민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가 아닌 전문가들의 결정을, 주권의 대리자인 정치인들은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할까?
독립행정기구를 연구한 프랭크 바이버트(Frank Vibert)의 책(The Rise of the Unelected)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쓰였다. 이 책의 결론 부분은 다행스럽게도 선출되지 않은 전문가의 의견, 즉 독립행정기구의 제언들이 선출직 권력자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독립행정기구들은 행정부의 한 형태이자 새로운 형태의 권력 분산이며 이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은 민의의 대변인인 정치인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은 전문성을 갖기 어렵게 한다. 이에 독립행정기구는 선출직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통해 독자적인 합법성을 갖되 책임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 존재의의를 달성해야 한다.
정보의 홍수인 현대 사회에서 독립행정기구는 전문가인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더욱더 신뢰할 만한 정보에 근거하여 판단함으로써 권한을 가진 선출직 정치인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줘야 하며 궁극적으로 국민에 대한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선출된 권력과 위임된 권한 사이의 긴장 증가는 일견 대의민주주의의 쇠퇴로 보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보다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보다 강건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독립행정기구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선출직 정책결정자의 의사에 반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때 구조적, 제도적으로 독립행정기구 설립의 근본적 목적을 제약하지 않으면서도 민주적 의사결정에 기여하고 관료와 정치인의 책임성을 달성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결국 정치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여론에 귀를 기울이되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객관적 의견을 내놓아야 하는 독립행정기구, 그리고 이들의 의견에 신중히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이 극히 중요한 시점이다.
독립 행정기구의 객관적 조언이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의사결정을 조력하고 그리하여 공익의 수호에 방점을 둔 의사결정자의 결단이 결국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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