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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청산별곡 재조명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10.26 18:21 수정 2020.10.26 18:21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 데뷔한 것은 고려시대다. 코리아(korea)란 문자표기만 봐도 확실하다. 예성강 벽란도항에 드나들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서양에 ‘코리아’란 낯선 나라를 소개했다.
고려시대 문학의 주류는 고려가요다. 고려가요의 대표작이 바로 ‘청산별곡’이다. ‘별곡’이란 이별의 노래란 뜻이다. 인생에 있어 중대 전기를 제공하는 것이 만남과 이별이다.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이동과 이별이 많다. 고려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역대 국가 중 가장 자주성이 강한 나라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는 초기에는 거란과 여진의 침입, 후기엔 몽고와 홍건적, 왜구의 침입으로 평화로운 날보다 격동기의 연속이었다. 전란이 잦다 보니 남자는 출정하여 전사하고, 여인들은 적병들의 노리갯감이 되어 가정은 파괴가 되고 국가 사회는 안정과는 거리가 먼 불안정이 지속될 수 밖에 없었다. 이별과 이동이 많아 개인적으론 한(恨)이 깊었지만 문학적으로 특히 시방면에 이별문학-별곡이 수준 높아 정신적으론 조금은 위안이 되는바 있다.
‘청산별곡’은 고대의 많은 시가가 그러하듯 작자가 미상이다. 어떤 특정 시인의 정서라기 보다 동시대 대다수 사람들의 애환을 드러내는 만큼 작자가 ‘실명씨’라고 조금도 아쉬워할 것은 없다고 본다. “살으리 살으리랐다, 청산에 살으리랐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랐다,/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 첫연에 들고 보니 말끝마다 유전음(流轉音) ‘ㄹ’이 많아 시를 읽으면 유창성이 끝내 준다. 아름다운 시는 뜻이 아름다운 시가 아니라 읽으면 금쟁반에 은구슬이 굴러 가듯 소리가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시가 아니겠는가. 후렴구인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도 우리나라 말이 아닌 터키 말이며, 그 뜻은 돌아가야 하리 돌아가야 하리 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리란 뜻이다.
지금까지 아무 뜻도 없는 흥을 돋우는 조흥구라 가볍게 봤는데 그 새로운 뜻을 대하고 보니 ‘청산별곡’은 고려가요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고려시문학의 대명사라 해도 조금도 허풍이 아니다.
2연에 밤 낮 새가 운다. 내 마음이 슬프니, 새의 기쁜 노래도 환장하게 슬프기만 하다.
3연에는 ‘물 아래 가던 새’를 보는데, 강에 어울리지 않게 녹슨 쟁기를 지고 강가에서 어정거리니 아웃사이더 일 수 밖에 없다.
5연에 혼자 있는 밤이 부담스럽다. 밤이 낮보다 더 외로운 고독한 사람은 낮보다 밤에 생을 등지는 일이 요새도 많다.
6연에는 난데없는 돌을 맞고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한 절망의 극치가 있겠는가.
7연에 산에도 강에도 살 곳을 찾지 못하고 망망한 절망의 큰 바다 앞에 선다. 맛갈스런 굴이랑 조개를 먹어도 불안정한 마음이 어디로 갈건가.
8연에 마당을 돌아서 가다가 사슴이 짐대에 올라가 해금을 켜는 걸 듣는다. 지금까지 8연은 난해한 미해결의 장이었는데 역사학과 국문학을 파고 드는 두더지인 필자가 기어이 중대발견을 하고야 만다.
‘솟대’(대원사 발행)를 펼쳐 보다가 드디어 역사의 숙제를 풀었다. 그 누구도 풀 수 없었던 난제 중의 난제를, 기원전의 스키타이인의 청동제 유물에 짐대(솟대) 위에 냉큼 올라 앉은 ‘사슴이 있는 솟대’를 보았다. 청산별곡은 후렴구와 제8연에 터키와 스키타이족의 언어와 유물까지 노래에 등장하는 국제적인 시가인 것이다. ‘청산별곡’의 청산이란 실제 지명이 충북 괴산군에 있어 노산 이은상 선생은 충북 청산을 청산별곡의 실제 장소라고 생전에 밝히신 적이 있다.
제9연엔 독에 가득 찬 강술 앞에 닐니리야를 부른다.
기쁘도 한잔, 슬퍼도 한잔, 술술 넘어 가는 술 덕분에 우리 겨레는 지금도 술술 잘 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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