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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젠 대형연구시설 구축 프로젝트 체질 바꿀 때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12.07 18:28 수정 2020.12.07 18:28

김 유 빈 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핵융합 실험 장치인 케이스타(KSTAR)가 1억도 플라즈마를 20초간 유지하면서 기존 세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KSTAR는 미래 청정에너지인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필수적인 초고온 플라즈마를 300초 이상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연구하기 위해 2007년 건설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구시설이다.
핵융합, 우주, 원자력, 가속기, 천문 등은 이른바 거대과학(Mega Science)으로 분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MSF(Mega Science Forum)에 따르면 거대과학은 ▲대규모 예산 투입(scale) ▲독창성(uniqueness) ▲복잡성(complexity) ▲급진적 혁신성(radical innovation)의 특징을 갖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거대과학은 해당 연구가 목표로 한 과학기술적 성과 달성 외에도 과학기술 강국으로서의 국격 제고,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 주도, 파급 기술로 인한 연관 신산업 창출 등의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에 따라 많은 과학 강국들이 대규모 인력, 예산 투입을 감수하면서도 이 어려운 분야를 정복하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앞서 핵융합의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거대과학 연구 분야는 KSTAR와 같은 대형연구시설의 의존성이 다른 어떤 과학연구 분야보다 크다. 그러다 보니, 국가적 재정 뒷받침을 전제로 해야 수행이 가능한 연구가 대다수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연간 수조원 규모의 예산이 관련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당초 계획된 일정이나 예산을 초과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에 대한 해법으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기법을 적용하여 체계적으로 사업관리를 하겠다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연구시설은 연구·개발(R&D)과 엔지니어링(engineering)이 복합된 난이도가 매우 높은 연구 분야이다. 또한 이들 프로젝트가 대부분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대상에 해당한다. 예타 과정에서 경제성, 정책성, 기술성 평가를 하지만, 이를 통과하고 난 뒤에는 총사업비와 일정이 고정되어 버린다.
기술적 불확실성과 난이도가 매우 높은 이러한 대형연구시설 구축 프로젝트를 고정된 총사업비와 일정 내에서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은 연구자(프로젝트 매니저)의 몫이 된다. 아무리 체계적인 사업관리 기법과 지침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프로젝트 매니저에게는 매우 가혹한 여정이 시작된다.
대형연구시설은 사전기획을 통한 도입 타당성 검토 이후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구축, 운영 등의 단계를 가진다. 각 단계를 거치는 동안 제시된 그림과 같이 기술적 불확실성의 식별이 점차 구체화 되면서 프로젝트의 예측성이 높아져 범위, 일정, 비용과 같은 프로젝트 기준(baseline)의 산정 정확도가 점차 정교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대형연구시설의 도입 검토가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대과학 시설이 주는 과실(果實)이 크며, 지역에 유치라도 한다면 상당한 치적(治績)을 쌓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책성, 경제성 검토가 우선시 되어, 기술적 준비도, 연구개발을 통한 핵심기술 확보 가능성, 예측되는 리스크와 영향 등 기술성 검토가 기획 단계에서 소홀히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기획 단계의 불완전성은 실행단계의 부실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즉, 재정이 투입된 이후 선행 단계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리스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타가 통과된 이후에는 총사업비, 일정이 고정되어 버려 실질적으로 이후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발생되는 리스크를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진다.
예산, 일정, 범위 등 프로젝트 기준의 계획 변경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를 책임 있게 승인해줄 수 있는 의사결정체계(project board)도 없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계획 대비 실행 관련 프로젝트 성과(performance)정보를 지속적으로 축적하여 의사결정체계가 프로젝트 건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의사결정체계에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이유도 없을뿐더러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사전기획과 예타 과정에서 기술적 불확실에 대한 부실 검증에는 그 자신의 책임도 무시할 순 없기 때문이다. 착수 단계에서부터 시작된 이 불완전성은 결국 프로젝트의 수행 중반 또는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곪아 터져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PM 기법을 적용하여 체계적으로 사업관리를 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를 포함한 대형연구시설 구축 프로젝트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연구 현장에 PM 기법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던 이유를 이제는 잘 분석해야 한다.
사실 정부도 그간 여러 차례 시도된 사업관리 체계 개선에 대한 시행착오를 통해 어떠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제도적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뿐이다. 그간 제도적으로 풀리지 않았던 몇 개의 문제라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형연구시설을 필두로 하는 거대과학 연구가 가지고 있는 미래 신성장 동력 창출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이제는 근본적인 체질을 바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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