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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상(日常)의 가운데서…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12.27 17:54 수정 2020.12.27 17:54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아들의 이른 아침 출근길을 하루도 안 빠지고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는 아버지, 어머니의 행복을 당신은 아십니까? 행복이란 먼데 있는 게 아니라 깨닫고 보면, 늘 우리 가까운 주변에 있다.
학력 인프레이션 덕분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해방 이전에는 보통학교(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면서기·순경·금융조합서기·우체국직원(서기·집배원)·훈도(초등교사) 등 못할 게 없는 동화같은 시대였다.
4년제 대학을 혀가 빠지게 졸업을 해도, 40세가 넘도록 취업을 못 해, 고등 실업자로 절망의 거리를 헤매다 못해 청춘이 늙어 중년이 된 실직자 집단이 포진하고 있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청년실업자가 겁나게(!) 많아서다. 언젠가부터 건강보다 직장을 앞세우게 되었다. 직장이 있어 돈벌이를 하면, 몸에 병도 쉽게 고칠 수 있지만, 건강인도 무직자로 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없어 불치병을 달고 살게 되니, 건강보다 직장이 더 소중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만 아파도, 가족 전부가 아파하듯이, 실직자 자식이 한 사람만 집에 있어도 부모는 기가 죽고, 자식 모르게 걱정과 한숨이 늘 곁에 있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흔이 넘어, 다행히 아들이 말직이라도 얻게 되어, 당사자인 아들, 부모도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했다. 아들도 뒤늦게 얻은 낮은 자리에서 최선(지성)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 늘 아들을 지지하던 아버지의 눈이, 슬기롭다는 마음이 남몰래 든다.
위정자나 경제인이나, 청년취업을 제일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청년의 앞길이 열려야, 행복한 가정과 튼실한 국가가 된다. 말로만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복창하지 말고, 실천궁행 해야 한다.
올해는 건국이래 최대 불운의 해로, 코로나 대역질이 창궐하여, 국민건강과 국가 경제를 말아 먹었을 뿐 아니라, 나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중앙일보신춘문예당선(1967년) 시인으로, 정식 시인이 된 지, 54년이 되었지만, 올해 같은 시창작 불황이 없었다. 솔직한 말로, 올해는 내 마음에 드는 시다운 시를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어두운 사회 분위기 앞에, 나의 정서도 밝을 수는 없었다. 나와 우리 사회는 별개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임이 확실하다.
올 한해 극성을 부리던 코로나 역질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밝아오는 2021년은 살벌한 사회와 살벌한 정치가 안 되도록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올해(2020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그동안 안부가 궁금하던 후배 시인 변희자 여류시인선생이 12월 15일 뜻밖에 밝은 목소리로 안부전화를 해 주어, 건재를 과시했다.
변희자 시인이 문경여고 2학년때 지은 시 ‘피리’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피리’라는 소재로 변희자 시인의 ‘피리’를 당할 시가 없음을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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