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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출산·양육 정책의 패러다임 확장 논의 기대하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2.07 17:48 수정 2021.02.07 17:48

조 인 영 부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최근 일련의 아동학대로 인한 사회적 공분과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아와 아동의 건강하고 안전한 성장을 위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책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행 출산 및 양육정책의 여러 허점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인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계속 먹먹해진다.
먼저 관심의 사각지대이자, 어쩌면 모두가 애써 눈을 감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야 중의 하나가 10대 청소년 및 20대 초반의 어린 미혼모(부)에 대한 지원 문제일 것이다.
산달이 가까워져서야 임신 사실을 알았거나, 임신 사실을 비교적 일찍 알았더라도 두려움에 병원을 찾지 못했을 어린 학생들은 임신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 가정 및 학교에서 배척당할 것이 무서워 최대한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쓰며, 많은 경우 가출을 택한다.
운이 좋은 경우 미혼모 보호시설의 조력을 받기도 하나, 상당수가 ‘청소년 산모 임신 출산 의료비 지원’ 신청은커녕 산전 검진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화장실이나 모텔 등에서 홀로 출산한다.
홀로 출산한 아기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미혼모(부)들은, 어렵게 알아낸 정보를 통해 가까스로 아기를 시설 혹은 베이비박스에 맡긴다. 이들의 아기는, 사실 버려진 아기가 아니라, 낙태하지 않고 지켜냈다는 의미에서 ‘지켜낸 아기’라 불려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베이비박스가 오히려 아동 유기를 증가시킨다는 이유에서 시설 폐쇄를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베이비박스의 역할을 대신할 대체 시설을 마련하였는가? 청소년 부모, 혹은 아직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청년층이 아동을 돌보며 함께 지낼 수 있는 국가적 지원시설이 존재하는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상황의 청소년들이 일단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적어도 아기를 위탁할 수 있는 ‘알려진’ 보호시설이 사설 베이비박스뿐이라는 상황은 정부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아동 양육 및 저출산 정책에 126조 원의 재정을 투입했다는 사실과 맞물려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들의 경우, 엄마의 직접 보육은 물론이거니와 입양으로 이어지기도 쉽지 않아 시설로 보내지는 경우가 많다.
흔히 입양특례법 때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족관계법이 친생부모에 자녀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고 있기에, 가족관계 등록이 부담스러워 정보를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엄마에게 입양 동의를 얻지 못한 아기는 가정보다는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게 된다.
일부의 경우 지자체에 의해 입양이 추진되기도 하나, 이는 어쩌면 제도가 아동의 가정 양육에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서 의료기관의 출생신고 의무화 방안도 논의되고 있으나 큰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또한 엄마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부들의 사례는 더욱 눈물겹다.
일단 상당 기간동안 미혼부에 의한 아동 출생신고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사랑이법’ 등을 통한 일부 개정이 있었으나 이 역시 여전히 친모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를 전혀 몰라야만 출생등록이 가능하다는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여전히 관청에 의한 등록 거부 사례가 빈번했으며,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 경우에도 법원은 친모의 이름을 안다는 점을 근거로 출생등록을 기각한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는 존재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부존재가 된다.
건강보험 혜택도 미혼부의 출생신고 전 자녀에게는 단 1년 동안만 적용되어왔으며, 이후에는 매번 비급여 비용을 지급해야만 소아과를 이용할 수 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난 8월 정부는 제도개선안을 일부 마련하였으나 현재도 여전히 미혼부 양육의 어려움에 대한 보도는 이어지고 있다.
유전자 검사가 일반화된 21세기에는 쉽게 친자관계를 추정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여전히 반드시 친모만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낡은 법이 유지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수차례 언론에서 그 부당함을 지적해왔지만, 정부는 출생등록 제도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입법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의원 발의안은 번번이 입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핵심은 미혼모(부)와 아동의 보호부터 직접 양육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일단 미혼모(부)들을 위한 시설과 법적, 제도적 보호는 공론화된 논의의 장에서는 빗겨나 있다.
베이비박스를 양성화하면 유기가 더 늘어난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이는 실제 베이비박스에 방문한 미혼모들의 상당수가 관계자들의 상담 후 아기를 직접 양육하겠다며 돌아간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물론 돌아간 그들 역시 무척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을 것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조금 더 나이가 있는 20대 미혼모의 경우 역시 상당수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직접 아기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만약 미혼모(부)가 아기를 직접 키우겠다고 결심하는 경우, 손쉽게 신청 가능한 주거 및 생활비, 양육비 지원이 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설사 비혼이더라도, 친부 혹은 친모에 의한 양육의 장점은 단점을 훨씬 상회하며, 서툰 부모가 아동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문제 역시 제도적 보호가 있는 경우 더욱 예방하기 쉬울 것이다. 아기들과 어린 미혼모(부)를 보살피는 데 약간의 정부 재정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저출산에 대한 국가의 공포도, 저출산 및 양육정책에 지난 10년간 209조를 쏟아붓고 있다는 노력도, 관료적이고 유교적인 터부 앞에서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까? 선진국에서 저출산이 문제가 되지 않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비혼을 전제로 한 출산율이 높기 때문임을 우리는 사실 애써 간과하고 있다.
한국의 출산 정책은 혼인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의 비혼 출산 비율이 2~3% 밖에 되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어쩌면 당연한 전제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 정책마저 비혼 자녀에 대한 차별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선진국에서는 10대 미혼모이든 20대 미혼모이든, 아기를 낳은 미혼모에 대한 주거 지원 및 생활비 지원이 일반적이다. 흔히 저발전 복지국가로 분류되는 영국 역시 미혼모에 대한 지원 정책은 상당히 관대하다.
영국은 미혼모가 키우고 있는 아동의 수에 비례해 지원금과 주거 지원을 제공하며, 청소년 부모가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교육 지원까지 제공한다. 이 같은 정책이 오히려 청소년 임신을 부추긴다는 일부의 비판도 있지만, 적어도 아동 유기나 길거리 출산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는 매우 적다.
한국의 미혼모(부)들에게도, 거주지 및 생활비를 제공하여 아기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어린이집 등에서 낮 동안의 보육을 맡아줄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아기의 부모가 다시 생계를 위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해야 할 시점이다.
나아가, 반드시 혼인만을 전제로 한 가족 정책의 근간도 조심스러운 수정이 필요하다.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방송인 사유리의 출산이 많은 사람에 의해 응원받았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비혼으로 태어난 아동을 보호하는 정책이 곧 비혼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기의 성교육 강화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동을 보호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가, 주로 독지가와 사설 단체를 통한 제한적 지원보다는 보다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정책을 통해 정부에 의해서 주도되기를, 그래서 더는 음지로 숨어들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고 유기하는 부모가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생등록조차 되지 않은 숨어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사실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병원도, 어린이집도, 학교에도 가지 못했을 이 아이들은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정부는 모든 아기와 그들의 어린 부모를 제도권의 보호 안으로 포용할 책임이 있다.
저출산 및 양육정책에 이미 상당한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다수의 국민들은 이 같은 사각지대를 더는 이해하기도, 납득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정부가 인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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