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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람은 제가 한 말대로 된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2.16 18:20 수정 2021.02.16 18:20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나는 어려서부터 달변(?)이고 나름대로 뻥이 센 아이였다. 뻥이 센듯하지만 그대로 이루어질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동기생인 분이네 삼촌은 서울에 있는 형의 출판사에서 경리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처가댁이 바로 우리 이웃집이었다. 처가에 친구삼촌이 오시면 친구의 안부도 물을 겸 인사드리는 걸 잊지 않았다. 문학청년으로 내 포부도 피력했는데, 중앙일간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싶다고 했더니, 친구삼촌도 내 포부가 큰 것을 칭찬해 주셔서 괜히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했다.
집에 나이로 18세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춘문예당선은 그 당시 나의 재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람팔자는 말대로 된다. 전혀 가능성이 없던 중앙일간신문 신춘문예당선은 군복무를 마치고 25세에 소원이 이루어졌다. 어설픈 내가 군복무 기간 중 천 여 대의 배트세례를 받으며 물렁한 인간이 감정적으로도 세련된 인간으로 승화가 되어 중앙일간신문 신춘문예 당선시인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1967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상금은 시·시조 부문은 똑같이 2만 원이었다.
당시는 오백 원이 최고액권이었다. 지금은 5만 원권이 최고액권이니, 당시(1967년) 2만 원은 지금 돈 200만 원보다 많다고 본다. 1966년에 교육대학 1기분 등록금이 4,500원이니 상금 2만 원이면 당시 2년제 교육대학 2년간 등록금 1만 8,000원을 내고도 2,000원이 남는 거액이었다.
필자는 유복자로서 당시 동기생 200명 중 가세가 201(!)등이었다. 내게 신춘문예 당선은 기성시인이 된 기쁨보다 상금 2만 원이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상금 2만 원으로 교회 감사헌금 2,000원을 하고 나머지는 학채(學債)에 충당했다. 위기일발을 하느님이 구원해 주신 거다. 친구 숙부 앞에서 신춘문예 당선을 이루겠다고 한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뻥(?)이 센 나는 말대로 다 이뤄져 신임도(?)가 높은 인생이 되었다.
솔직히 당시 초등 장학사는 내실을 갖추지도 못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권위주의에 빠져, 참신한 제대 군인 시인 교사를 박해하여 내겐 장학사가 천적이었다. 나는 당시 속으로 다짐했다. 초등학교교사 신분으론 절대로 장가를 가지 않겠다고 가소롭게(?) 공언(公言)했다.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집에 나이 28세로(한국식) 당시로는 노총각에 들었다. 30세도 바로 눈앞인데…·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수 있을까. 그해(1969년), 9월 12일 문교부시행 중등준교사 자격 고시검정 역사과에 응시, 바로 그해에 단발명중(單發命中)하여 중등교사가 되어 만 29세에 장가를 갔다. 중등준교사 고시검정은 문교부가 주관하고 출제와 채점은 서울대 사범대학 해당교수(위원)가 맡았다. 공정한 시험 관리가 권위를 더해 주었다.
학창시절(중·고 시절)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등교사직을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고 나서 외아들로 홀어머니를 잘 모셔야 하는데 집도 절도 없고 직장마저 없으니 살길이 막연하여 제대하고 얼마 안 되어 1964년 가을에 제 1회 초등학교 준교사 자격 고시검정시험을 문교부에서 실시했는데 처음 실시하는 시험이라 기출 문제집도 나온 게 없고 무작정 시험에 대들었다. 고시과목 10개 중 60점 이상을 득점한 ‘교육학·국어·사회·실업’의 4과목이 합격했다. 1965년에 교육대학 입시에 응시했다. 무난히 합격하여 어렵게 고학(!)으로 2년을 마치고 초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1967년 문경군(당시) 금동초등학교 교사로 교단에 첫 출발을 했다.
의무복무 끝내고 곧바로 중등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중등학교 준교사 자격증(역사과)을 취득한 뒤, 경북도교육청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곧바로 응시하여 36명 중 3등으로 합격하여 1970년 3월 1일자로 경북 문경군 가은중학교 역사교사가 됐다.
뻥(?)이 심한 것 같았지만 나는 말대로 다 되었다. 처음엔 중등준교사로 출발은 미약했지만 끝내는 국공립 중·고등학교장이 되어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된 것이다. 중등준교사고시검정은 엄격한 시험관리와 서울대 교수님(위원)이 출제·채점하여 권위를 드높였다. 일간신문의 신춘문예도 엄정한 관리와 공정한 심사가 응모자들에게 신뢰감과 애착심을 더해 주는 게 아닐까?
빈자일등(貧者一燈)을 아끼지 않는 신춘문예 실시 일간 신문사에 애독자들은 격려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신춘문예가 더욱 번창하기를 두 손 모아 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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