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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암 가족력이 있으면 나도 암에 걸리는 걸까?

황보문옥 기자 입력 2021.05.06 13:58 수정 2021.05.06 14:13

서희선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가족력은 ‘나도 질병에 걸릴 수 있다’라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가족력은 건강검진과 더해져 특정한 질병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암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함께 꼬리표처럼 언급되는 ‘가족력’은 무엇이고, 그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수년 전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 절제술을 받아 관심을 모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 난소암을 앓다 숨진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 ‘예방’ 목적으로 유방 절제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암 유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흔히 암의 유전성을 이야기할 때 ‘가족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때도 가족력이 무엇인지 문진을 하곤 한다. 이때 유전력과 가족력의 정의가 다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유전력은 특정 유전자 문제를 똑같이 가지고 있어 암이 대물림되는 경우로 안젤리나 졸리가 이에 해당한다. 한편 가족력은 이러한 유전적 요인에 생활 습관을 포함한 환경적 요인까지 통틀어 정의한다. 의학적으로는 ‘3대에 걸친 직계 가족 혹은 사촌 이내에서 같은 질환을 앓은 환자가 2명 이상’인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사촌의 암 발생 여부를 알기는 쉽지 않아서 흔히 3대 직계 가족 위주로 암 발병 여부를 물어 가족력을 파악한다.
암 가족력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는 2004년에 발표된 스웨덴과 독일 암연구센터의 공동 연구이다. 스웨덴인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직계 가족력과 암 발병 위험을 조사한 결과 부모가 암에 걸린 경우 자신의 암 발병 위험은 위암, 대장암, 유방암, 폐암에서 1.8~2.9배, 형제자매가 암에 걸린 경우는 2.0~3.1배, 부모와 형제자매가 모두 동일한 암에 걸린 경우는 3.3~12.7배 많았다. 부모보다 형제자매 간의 가족력이 강한 것은 같은 세대인 형제자매가 암을 유발하는 환경 요인을 공유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수치를 한국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국내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암은 직계 가족 3대에서 1명만 발병해도 가족력으로 보고 정기검진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로 꼽히는 ‘암’. 암 가족력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위암은 가족력만 있는 사람의 암 발병 위험은 2.9배지만 가족력과 함께 헬리코박터균이 있는 사람은 5.3배, 흡연 경력이 있는 사람은 4.9배 발병 위험이 크다. 대장암은 부모가 대장암 환자일 경우 본인이 걸릴 확률 3~4배 이상 증가하며 형제자매 중 대장암 환자가 있는 경우 많게는 7배까지 위험이 증가한다. 부모나 형제자매 중 대장암 환자가 많을수록, 발병 시기가 45세 이하로 일찍 발병할수록 유전적 요인이 강하므로 40세부터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규칙적으로 받으면 가족력에 의한 대장암 사망 위험이 70%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2명 이상이면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이 경우 약 20%에서 유전자(BRCA1·2) 돌연변이가 있고 캐나다 연구 결과 BRCA1·2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의 유방암 발병률이 50~85%였다. 미국에서는 유방암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면 유방암 치료제인 타목시펜을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거나 유방을 미리 절제한다. 모유 수유도 가족력 발병 억제에 도움이 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이 간호사 6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머니가 유방암을 앓은 여성이 출산한 뒤 모유 수유를 하면 나중에 유방암에 덜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소암은 유방암과 가족력이 상호 관련돼 있는데 BRCA1·2 유전자 돌연변이가 두 암 발병에 모두 관여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암센터 연구 결과, 유방암 가족력이 있으면 난소암 위험이 2배가량 높아졌다. 어머니나 자매 중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 난소암 발병 위험이 40%나 높았다. 마찬가지로 난소암 가족력도 유방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 난소암은 임신·출산 경험이 많거나 모유 수유를 오래 하는 등 무배란 기간이 길수록 발병 위험이 줄어든다.
폐암은 가족력이 있으면 발병 위험이 2~3배 높다. 가족력이 있는 10년 이상 장기 흡연자는 40세 이전부터 저선량 흉부 CT(전산화단층촬영)를 매년 한 번씩 찍어야 한다. 일반적인 흉부 X-레이로는 초기 폐암을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립선암 가족력이 있는 남성은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4.5~8배 높으므로 가족력이 있으면 보통 50세부터 받는 PSA(전립선 특이항원) 검사를 40세부터 받는 것이 좋다. 담낭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 담석이 생기면 예방적으로 담낭을 절제하기도 하는데 담낭 절제술을 하지 않는 경우라면,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씩 담낭암 검진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부모보다 형제자매 간의 가족력이 강하다. 부모 모두 고혈압이 있는 한국 성인의 29.3%는 고혈압이고 형제자매가 고혈압인 사람의 57%는 자신도 고혈압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국민건강영양조사). 부모 모두 고혈압이면 50%가 고혈압이라는 외국 자료보다 수치가 다소 낮지만 한국인이 서양보다 가족력이 덜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가족력이 있다면 규칙적인 운동과 저염식이 중요하다. 짠맛 대신 신맛이나 매운맛을 살리는 향신료나 식초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서양에서는 부모 중 한쪽이 당뇨병이면 자녀의 발병률을 15~20%, 부모 모두이면 30~40%로 본다. 우리나라 식생활이 서구화되어 서양의 가족력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족력이 있다면 체중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비만이면서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평균 49.3세에 당뇨병이 진단되어 가족력이 없는 사람(57세)보다 8년이나 빨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부모가 심장마비를 경험한 사람은 심장마비를 겪을 위험이 가족력이 없는 사람보다 1.5배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남성이 40대 이전, 여성은 50대 전에 동맥경화가 생길 경우 자녀에게 동맥경화 위험이 2배 높아진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력이 있다면 30대 초반부터 1년에 한 번씩 혈압·혈당·콜레스테롤 검사를 받고 40대부터 1년에 한 번 심전도 검사를 받도록 권장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동반한 사람은 1~2년 간격으로 운동부하 심전도 검사를 받도록 한다.
부모가 알츠하이머성 치매이면 자녀도 노년기에 알츠하이머성 치매 발병 가능성이 2배 정도 높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아포지단백 4형이라는 유전자와 관련 있는데 이 유전자를 1개 물려받으면 2.7배, 2개 물려받으면 17.4배 위험률이 높아진다. 가족력이 있다면 노년기에 혈액 검사로 치매 발병 가능성을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글 서희선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2021년 5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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