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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년 퇴임 시집 ‘자유의 여신상’의 추억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5.13 14:31 수정 2021.05.13 14:31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 사람이 한 직종에 평생 종사한다는 것은 무척 지루하고 변화도 없으니 지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국공립중고등학교장(문경중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것이, 17년이나 됐다. 나의 경우 평교사 시절 27년은 다사 나난하고 파란만장하여 견뎌내기가 어려웠지만 중·고등학교 교감으로 승진하고 나서, 교감·교장 재직기간(10년 반)은 순풍에 돛단 항해요, 만사형통했다. 동료교직원들이 나의 교감·교장시절의 관운대통을 몹시 부러워했다.
세상만사는 우연이 없고 심은 대로 거두기 마련이지만, 하느님의 축복이 있어야 형통 할 수 있다. 필자는 교직경력이 37년 6월이요, 1967년 1월 1일 중앙일보신춘문예당선 시인으로 기성시인경력은 37년 8월으로, 교직경력보다 시인경력이 꼭 두 달 앞섰다.
나는 정년퇴직 기념으로 정년 퇴임기념 시집을 두 권이나 펴냈는데, 첫 기념시집은 ‘세상에 젤로 재밌는 시집(2)’이요, 둘째 기념시집은 김시종 24시집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첫 기념 시집(23시집)은 문경중 26회 졸업생(제자) 김병연 사장이 기념시집을 내주었고, 이 소식을 들은 문경중학교 23회 졸업생(제자) 이상욱 변호사가 시집 한 권으론 미흡하다며, 220쪽이나 되는 두꺼운 중량급 시집을 자진하여 내주어, 필자의 정년퇴임이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정년퇴임하는 교원중에는 제자들이 자진하여 퇴직문집을 한권이라도 내주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필자는 제자들이 자진하여 퇴임기념시집을 두 권이나 내주었으니, 국내에서도 드문 쾌거라고 하겠다.
평소 의리를 생활신조로 하는 필자에게 이상욱 변호사, 김병연 사장이 의리의 시범을 보여주어 고맙고도 송구스러웠다.
김시종 퇴임기념시집 ‘자유의 여신상’엔 185편의 자작시가 실려 있는데, 줄잡아도 150편 이상이 무게 있는 명시(名詩)수준으로, 시집을 내준 제자(이상욱 변호사)가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 같다.
필자는 불우의 대명사로 유·소년 시절을 가난 속을 헤엄쳤지만, 신(神)의 은총으로 일찍 시인(신춘문예당선)이 되고, 중등교사 자격고시 검정도(1969년 27세에 역사과) 응시 첫해에 바로 합격하고, 임용고시도 36명중 3등으로 합격하여 가장 빠르게 임용이 되었다.
요사이도 심심하면 문경중 제자 이상욱 변호사님이 내준 ‘자유의 여신상’을 펴보며 깊은 감동을 누를 수 없다. 불우하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작품을 150여 편을 내게 주셨으니 하느님이 나를 유복자로 태어나게 하셨지만, 나는 유복자(遺腹子)가 아니라 유복자(有福子)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좋은 시집을 초등학교 같은 반 동기생인 김상분 학우께 보내드리고 싶지만 주소를 몰라 못 보내드리고 있다.
정년퇴직기념시집 ‘자유의 여신상’에서 시 한 편을 골라 내 칼럼 애독자들에게 선사하기로 한다.

(시) 삶의 의미 / 김시종
만원 버스에 한 사람이 타고 내려도
아무 표도 안 나듯이,

오늘 요단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지구의 하중엔 하등 변함이 없다.

너의 눈에서 눈물의 폭포가 쏟아져도
강물은 조금도 불어나지 않는다.

너의 웃음이 호들갑스러워도
가지를 스치는 바람만큼도
나뭇잎을 흔들리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너의 조그만 힘이
너의 조그만 눈물이
너의 조그만 웃음이
지구를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1989년 전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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