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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복지정책의 방향성과 일관성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5.31 18:25 수정 2021.05.31 18:25

조 인 영 부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한국 복지국가는 그 필요를 증명한 경우에 한해 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산조사(means-test) 혹은 자산조사급여(means-tested benefits)를 중심으로 그 제도적 기반을 설계해 왔다. 이는 쉽게 말해 수급자격을 충족해야 복지 수혜의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러 조건, 가령 소득, 자산, 신체적 장애 여부 및 장애 등급 등 여러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수혜 자격이 있으며, 이를 서류를 통해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어도 수급자로 선정되기는 쉽지 않다.
자산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복지국가는 소위 최소 복지국가로 불리기도 하며, 전체 정부 지출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반면 최근 등장하고 있는 포용국가나 기본소득과 관련한 논의는 이러한 자산조사를 기반으로 제도화되어온 한국의 복지국가에 대한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적인 접근이다.
필요를 엄격하게 증명하지 않더라도 ‘국민 전 생애에 걸쳐 기본생활을 보장한다’는, 국가에 의한 보살핌을 강조하는 포용국가의 캐치프레이즈는 엄격한 자산조사를 완화하고 국민의 보편적 행복권을 강화하여 실질적인 삶의 어려움을 축소하자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비록 구체적 언급은 피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상 현 수준의 복지비 지출로는 불가능하며 증세를 전제로 한다.
자산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복지제도는 상당한 행정력을 요구한다. 자격에 대한 심사, 실사, 다양한 복지제도에 대한 각종 자격 및 지침 확인 등 일선 사회복지공무원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엄격한 자격 요건 충족 및 구체적인 복지제도 접근에의 어려움을 지적해 온 사람들은 자산조사의 완화를 환영한다.
반면 이러한 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강력한 행정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국 복지국가가 자산조사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왔고 제도적으로 구체화 되었기에 이 제도적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는 다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주어진 예산 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가난과 불평등을 축소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보편복지를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해석하거나, 엄격한 자산조사를 거쳐 수혜자를 선정해야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의견도 이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논쟁이 한국 복지국가의 특성에 대한 고찰 및 미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포용국가나 기본소득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한국 복지국가가 놓여있는 제도적 맥락 자체에 대한 논의는 제외하고 있다.
한국 복지국가의 역사적 경로 및 제도적 특성은 단지 학술적으로만 의미를 가지는 용어가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복지국가가 걸어온 길이며, 미래의 한국 복지국가가 걸어갈 방향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로 예측이기도 하다.
새로운 제도의 효과성은 기존 제도적 맥락에 대한 이해 위에서 가능하며, 새로운 제도는 기존 제도와의 조응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그 수명과 효과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일련의 논의는 결국 복지의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이며, 그리고 한국의 제도적 여건과 맥락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목표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선 한국 복지국가의 목표가 절대적 빈곤층을 줄이는 것인지, 불평등을 줄이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보편적인 행복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한국의 경우 저소득층 소득 감소가 소득 불평등을 확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 저소득층에 대한 적극적 이전지출은 불평등 감소에 도움이 되며, 소득조사 기반의 제도는 여전히 효과적이고 유효한 수단이다.
기본소득의 정책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가난의 완화인가 아니면 불평등의 축소인가? 아니면 보편복지의 구현인가?
목표는 실질적으로 증세를 전제로 하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만약 증세를 최소화한다면 이는 기존 복지수혜자의 몫을 줄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옳은 것인가?
만약 증세를 전제로 한다면, 이는 오랜 기간 증세를 최소화하는 이전지출성 최소 복지를 지지해 온 주된 납세자인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고소득층이 반드시 복지에 반대한다는 것은 오해로, 특히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있는 고소득층은 저소득층 생계급여와 같은 이전지출성 정책을 지지한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있다. 다만 이들은 증세를 전제로 하는 보편복지에는 비교적 부정적이다)
민주국가는 국민의 합의된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조타수이기에, 복지 역시 정책 목표의 분명한 설정과 합의가 선결되어야 한다. 목표를 설정했다면 무엇보다 제도들이 일관된 목표를 위해 서로 유기적으로 설계되어 움직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제도적 맥락이란 서로 괴리된 제도의 단순 합이 아니기에, 새로운 제도가 기존 제도와의 조응을 고려하여 한 방향을 위해 설계되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포용국가의 목표와 이상을 현행 제도의 맥락 위에서 다시금 점검해 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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