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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아프면 쉴 수 있어야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6.01 18:36 수정 2021.06.01 18:36

허 종 호 부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최근 승무원들의 생리휴가를 수차례 거부하고 생리현상이 실제 있었는지 소명하라고 요구한 혐의로 전 아시아나항공 대표에게 근로기준법 제73조에 근거한 벌금형이 확정됐다.
법원은 “생리현상 존재까지 소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생활 등 인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이며 생리휴가 청구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질병으로 인한 휴가에 대한 보장은 어떠한가. 현재 대한민국에는 상병제도가 없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사회에서의 몇 안 되는 긍정적인 효과는 아프면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정책적으로 기회의 창이 열렸음에도 아직까지 이를 법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그에 상응하는 치료와 요양이 가능하고, 와병으로 인한 소득보전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극소수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공공기관과 정규직, 대기업을 중심으로 단체협약이나 취업 규칙 등으로 유급병가 휴가가 보장이 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질병이 발생하면 연차휴가를 사용해야 하며 이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은 연차휴가도 적용되지 않고 있다.
보장되고 있는 회사들도 노동자들이 아프다고 하면 질병의 종류와 중증도를 증명을 까다롭게 요구하기도 하거나 평가 또는 채용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암진단 이후에도 직업을 유지하는 경우는 16.5%에 그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질병은 치료의 효과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시기이다. 어떠한 질병이든 예방이 가장 비용효과적이며 치료 또한 시기가 이를수록 좋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활과 근로 여건이 예방과 치료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검진 또는 치료의 시기를 놓쳐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시 소득감소로 이어지고 지속적인 치료와 재활 등을 더욱 어렵게 하는 빈곤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송파 세모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질병 또는 재해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가 경제활동을 단축 또는 단절시키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현 정부는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저소득층 중증질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여 가계파탄 방지하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고 없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으나 질병이 발병한 후의 사후처방이다.
이번 국회에서 상병수당 시행과 유급병가 휴가제도의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유급병가 휴가가 노동자와 가족에게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해소하는데 핵심적인 수단임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생활방역의 첫 번째 수칙으로 ‘아프면 집에서 쉬기’를 제시했지만 그럴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다면 이는 비현실적인 구호이다.
아플 때 쉴 수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쉴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쉴 수 있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말과 허상뿐인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의미 있는 행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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