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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글로벌 최저법인세, 경제시스템 전환 신호탄?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6.21 18:56 수정 2021.06.21 18:56

이 선 화 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코로나19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20년 초, 이 신종 감염병의 유행이 글로벌 사회경제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는 21세기만 해도 2002년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의 신종 플루(A/H1N1), 2012년의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를 기억한다. 이들 전염병은 발생 초기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였으나 바이러스의 공간적, 시간적 파급범위는 예상보다 넓지 않았으며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도 단기적 쇼크로 끝이 났다.
역사책에서 배운 질병으로는 가깝게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 멀게는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약 2,000만명에서 1억명의 사망자를 만들어 내면서 전쟁의 조기 종식과 미국 중심으로의 세계 경제질서 재편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사학자들은 흑사병의 창궐이 중세 유럽에서 봉건제가 몰락하고 근대적 시장경제가 출발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의 급감이 소작농의 정치적, 경제적 힘을 강화시켰으며 그 결과 임금이 상승하고 독립적 자영농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현대사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의미 있는 시스템 전환의 신호탄으로 평가될 것인가? 우선 백신의 조기 보급으로 바이러스의 물리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 제어되었다. 따라서 전염병 파급력의 직접적 지표라 할 수 있는 사망자 수는, 21세기의 다른 감염병보다는 크지만 스페인 독감보다는 작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제 관심은 경제적 복구와 질서 전환으로 옮겨가고 있다. 복구와 전환을 위한 정치·경제적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그 끝이 무엇일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여정의 중심부에는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재정 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으며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지휘봉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봄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변화의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옐런 장관이 주도하고 6월 5일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합의한 글로벌 최저법인세제의 도입은 코로나 이후의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점쳐 볼 수 있는 첫 번째 상징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결과물이라 하겠다.
글로벌 최저법인세는 세계적으로 공통의 법인세 최저세율을 정하고 해외법인에 적용되는 세율이 이보다 낮으면 그 차액만큼을 본사 소재국에 납부하게 하는 제도이다.
일부 다국적기업에 대해서는 본사나 물리적 사업장이 소재한 국가뿐만 아니라 제품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도 법인세를 납부하게 하는 방안에도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번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합의한 최저법인세 세율은 15%로 미 재무부가 지난 4월 처음 제시한 21%에서는 후퇴하였다.
그러나 세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조세를 낮추는 이른바 ‘바닥으로의 경쟁’을 멈추기 위한 국제협력이 처음으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선진 7개국이 최저세율 설정을 둘러싼 국가 간 이해득실 계산을 미루고 이러한 합의에 도달한 데에는 각국 정부가 처한 재정 운용의 절박함이 주효하게 작동하였다.
지난해 3월 이후 세계 주요국 정부는 지역 봉쇄(셧다운) 조치에 따른 경제 마비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수조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였다. 나아가 이번 회의에서 G7 재무장관들은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회복한 이후에도 양질의 일자리 문제, 기후위기, 불평등 심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교육·보육 부문 투자를 위해 향후 10년간 4조 달러의 예산이 소요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공적 지출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법인세와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의 인상, 100만 달러 이상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 인상 등 증세 계획도 구체화하였다.
다른 국가들이 처해 있는 경제적·재정적 여건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정부 재정의 장기적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공통의 필요성이 G7이 세수 확충의 가장 큰 걸림돌인 국가 간 조세경쟁의 제한에 합의한 배경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아 이번 합의는 1980년대 이후 형성된 국제적 감세 기조를 역전시킬 첫 번째 액션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1970년대 70%를 유지하던 미국 연방소득세 최고세율은 레이건 정부의 출범 직후 50%로, 다시 1986년 조세개혁법(Tax Reform Act)의 시행으로 28%로 인하되었다. 조세개혁법에 따라 법인세 최고 세율 역시 50%에서 34%로 인하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법안이 당시 97 대 3의 압도적 표차로 상원을 통과하였을 뿐 아니라 조 바이든 현(現) 대통령을 비롯하여 앨 고어, 존 케리, 테드 케네디 등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 모두가 여기에 기꺼이 서명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레이건의 ‘작은 정부’ 철학은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F.D. Roosevelt) 대통령 재임기를 거치면서 확립된 정부와 재정의 역할에 대한 기본 합의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역외 소득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법인세 개편방안,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의 ‘구글세’ 등이 시도되었으나 국제적 공조 없는 개별 국가 차원의 조세개혁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코로나 대유행에서 시작한 공동체와 정부 재정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국가 간 정책 공조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각국 정부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조세 프로그램을 통해 이제 다시 ‘당면한 위기의 해결자’로 나서고 있다. G7 정부는 글로벌 최저법인세 합의를 통해 그 첫 번째 관문을 넘어섰다. 다음은 무엇일까? 코로나 이후 글로벌 경제질서는 어떻게 전환될 것인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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