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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래생각] ‘민주 공화정’ 어떻게 만들어졌나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7.07 18:16 수정 2021.07.07 18:16

박 상 훈 초빙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국민의 지배’와 동일시하고 그것의 이상적 모습을 ‘직접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실현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에 가장 가까운 실현 형태로 ‘다수의 지배’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나치게 단순한 이해’이자, 거기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민주주의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작용을 낳는다.
민주정에서도 정부는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동의한 정부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했다. 정부가 없는 자연상태나 무정부 상태보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 정부하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정부는 구속력 있는 결정을 강제하는 공권력이다. 그 힘의 본질이 폭력인 것 또한 분명하다. 시민이 정부를 통제할 수 없다면 정부는 시민에 대한 책임성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자유로워진 정부는 시민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것 또한 역사 속의 수많은 사례가 실증하는 바다.
문제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정부는 필요하고, 시민은 정부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와 생명 그리고 노동을 통해 획득한 재산’을 좀 더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 믿고 피치자가 되는 것에 자발적으로 동의했으며, 그 때문에 무국가 혹은 무정부의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차단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그 믿음을 확고한 것으로 만들 수가 있겠는가.
지금으로부터 200년 하고도 34년 전 헌법 설계를 통해 미합중국 정부를 민주 공화정으로 만들어야 했던 제임스 매디슨이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세습 군주도, 귀족이라는 신분 집단도 존재하지 않는 당시의 미국에서 공화정은 필연이었다.
시민의 동의 없는 정부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선출직 시민대표가 정부를 이끄는 선택만이 허용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정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매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먼저 정부가 피치자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정부가 그 자체를 통제하게 해야 한다”
민중이 직접 통치에 나선다면 실제 일어날 일은, 더 많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파벌들의 선동정치다. 민중은 선동에 희생될 뿐, 그들이 직접 통치하는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파벌의 지배는 피할 수 없다.
통치는 그들을 대표하는 소수의 인물과 집단이 한다. 매디슨의 입장에서 볼 때 공화정은 민주적이되 동시에 확고한 대의제여야 하는 것이다.
이 지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아테네 같은 작은 도시국가가 아니라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규모가 큰 국민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의제를 한다는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디슨은 자각적이고 확고하게 직접 민주주의나 순수 민주정보다 대의제나 공화정이 더 우월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공익에 더 부합하는 결정은 민중의 직접 통치가 아니라 민중의 대표에 의한 통치체제에서 더 잘 도달된다는 데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목소리 큰 파벌의 지배를 가져오는 것에 비해, 대의제는 ‘선택된 집단들’ 혹은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매개로 ‘공중의 의견’을 더 현명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매디슨은 대의제가 갖는 이러한 효과를 ‘정제(refinement)’라 불렀다. 직접 통치는 선동의 방법으로 작동하고 대의 정치는 정제의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남는 문제는 정제의 효과는 어떤 조건에서 더 잘 발휘되느냐에 있을 뿐이다.
대의제가 공중의 의견을 더 잘 정제할 수 있으려면 이 과정에 참여하는 집단이 많아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인데, 매디슨은 이를 ‘확대(enlargement)’라 불렀다. 무리를 짓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는 자유의 원천이기도 하다.
대의제는 이런 결사의 자유에 기초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결사가 다양한 이익과 열정을 더욱 풍부하게 표출될 기회를 제공한다. 당연히 결사의 확대는 하나의 파벌이 ‘부도덕한 술책’을 부릴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다양한 결사체들이 공공의 의견을 나눠서 표출하고 집약해낸다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질 다수는 하나의 동질적인 다수가 아니라 ‘여러 소수들로 이루어진 다수(majority of minorities)’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전체 인구 가운데 제한된 일부만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었다. 매디슨의 헌법 설계는 이 문제를 돌파하게 했다. 이로써 규모를 확대해도 문제가 없는 체제, 흑인 노예든 농민이든 노동자든 여성이든 자신들의 결사를 만들고 대표를 파견해 공적 의견 형성 과정에 참여하고 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가 그 자체를 통제하게 해야 한다”는 매디슨의 말을 언급한 바 있는데, 수평적 책임성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매디슨은 정당, 시민운동, 이익집단, 언론 등 수많은 자율적 결사체들이 시민을 대표해 정부를 통제하는 수직적 책임성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정부의 힘은 강하다. 시민의 동의에 의해 탄생한 정부는 더 강하다. 따라서 정부를 쪼개고 그렇게 분리된 정부 기관 사이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보완적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가리켜 흔히들 권력분립의 원리라 하는데, 이 부분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매디슨이 주안점을 둔 것은 ‘개인적 동기’에 있었다.
직접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성급하게 만든다. 민중의 의지를 바로바로 확인하고 곧바로 실행하자는 조급한 열정을 부추기는 문제가 있다. 민중의 직접 통치에서 서로 다른 이익과 열정 간 심의와 조정, 협의와 타협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에 반해 시민의 의지를 여러 중간 집단들에 의해 다양하게 조직하고 표출하고 서로 균형을 만들어가게 하는 대의제나 공화정의 접근은 상호 공존과 절제, 관용을 필요하게 만든다.
오래 걸리지만 오래 가는 변화는 이런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조급하게 이루어진 결정,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숙고와 합의가 충분하지 않은 결정은 빠르다는 장점은 있을지 모르나, 그 결정을 집행하는 단계에서 더 많은 갈등 비용과 더 많은 시간의 소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일방적으로 추구된 변화는 혼란을 거듭하다가 ‘현상의 고착’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결정의 과정에서 숙고와 합의의 비용을 치르게 되면 집행의 과정은 안정된 협력을 통해 더 적은 갈등과 더 짧은 시간으로 추진될 수 있다. 매디슨의 민주 공화정이 지향했던 것은 바로 이런 정치, 이런 사회였다.
공적 사안은 ‘숙고된 결정’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입법이 심의, 숙려, 청문, 조정 등의 과정을 거쳐 느리게 이루어지도록 까다로운 절차를 갖게 된 건 그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한 나라의 법이 빨리, 많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긴급명령체제’에 가깝게 될 뿐 민주주의로부터는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공적 결정의 집행은 ‘합의된 변화’의 내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용자라 해도 노사 간 교섭과 협상 없이 큰 규모의 기업을 운영할 수는 없듯, 정의감을 가진 다수당이라 해도 입법을 혼자 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의회 없이 당정관계를 통해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의회 없는 체제를 누구도 민주주의라고는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중요한 정책일수록 여야는 물론 그로 인해 혜택을 보는 시민 집단과 불이익을 받는 시민 집단 사이에서 충분한 조정을 거쳐 집행되어야 구속력을 갖는다. 여당과 그 지지자만 정당성을 인정하는 입법이 많아지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불안해진다.
빨리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최소한 정치는 그렇다. 속도로 따지자면 권위주의나 전체주의를 따라갈 수 없다. 그에 비해 대의 민주주의는 느리고 복잡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어떤 체제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고,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도 더 잘 기여했다.
민주정도 공화정도 완전할 수 없겠지만 그간 인간이 만든 체제 가운데는 이보다 나은 것은 없었다. 더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현대 민주 공화정을 그 원리에 맞게 더 심화, 발전시켜야 할 이유는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대의 민주주의, 민주 공화정의 시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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