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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반려학개론] 삼성이 만든 또 하나의 반도체, 안내견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7.15 19:08 수정 2021.07.15 19:08

윤 신 근 수의사·동물학박사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시각장애인 안내 훈련견과 퍼피워커가 마트 매니저에게 입장을 거부당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매니저는 심지어 이들을 향해 고성까지 질렀다. 이 과정에서 잔뜩 겁을 먹은 훈련견 모습을 담은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하며 논란이 일었다.
11월 30일 롯데마트가 공식 사과하고, 앞으로 안내견과 훈련견을 배려하겠다고 알리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안내견 인식이 아직도 낙후한 상태였음을 인식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이 외출할 때 길잡이가 돼주고, 위기 상황을 미리 알려 보호하는 개를 말한다.
안내견을 비롯한 장애인 보조견과 훈련견은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의거해 대부분 장소(털 알레르기 환자 치료 공간 제외) 출입과 대중교통 탑승 등이 허용된다.
국내 최초 안내견은 1993년 6월7일 삼성그룹이 개설한 ‘삼성 안내견 학교’가 이듬해 배출했다.
이후 삼성은 30년 가까이 안내견 보급 사업을 펼쳐왔다. 안내견 한 마리를 양성하는 데 약 3년이라는 시간과 1억 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든다.
삼성 안내견 학교는 매년 약 10마리씩 안내견을 길러낸다. 지금까지 164마리가 나와 시각장애인을 도왔고, 지금도 돕고 있다.
금액만으로 160억 원 넘게 투입된 셈인데 수많은 시각장애인이 안내견 도움을 받아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가치는 수백억, 수천억원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반려인으로 잘 알려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의지와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기업의 사회 공헌은 수재의연금, 이웃돕기 성금이 전부였다. 이 회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한참 동안 외국 반려동물 서적이나 외화에서나 안내견을 보며 부러워하거나 신기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안내견은 군인 장교처럼 철두철미하게 양성된다. 강아지 때 자질을 평가해 합격하면 자원봉사자인 퍼피워커에게 위탁돼 약 1년간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이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면 다시 엄격한 선발 과정을 통과한 일부만 안내견으로 키워진다.
견종은 ‘골든 리트리버’, ‘래브라도 리트리버’, ‘스탠더드 푸들’, 골든과 랩의 혼종인 ‘골다도’(Golado), 랩과 스탠더드 푸들의 혼종인 ‘래브라두들’(Labradoodle) 등이다. 이들은 영리하고 온순해 안내견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길에서 안내견이나 훈련견을 만나면 놀라게 해서도 안 되지만, 과한 애정을 표출하며 만지거나 먹을 것을 주는 것도 금해야 한다. 안내견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어서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만 봐도 그들은 행복해할 것이다.
지난해 12월 11일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로봇 제작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2015년 ‘로봇 개’로 일컬어지는 소형 상업용 로봇 ‘스팟’(Spot)을 만든 업체다.
외신에 따르면, 현재 미국, 일본 등에서 개처럼 4족으로 보행하는 스팟을 안내견으로 활용할 방법을 연구 중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통해 그룹이 지향하는 인류 행복과 이동 자유,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 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꼭 스팟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안내견 로봇이 안내견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과 로봇에 탑재될 AI(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 간곡히 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안내견이 단순히 ‘길 안내’만 정확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달라. 그들은 시각장애인과 늘 함께하면서 맥박과 체온으로 심리적인 안도감, 정서적인 위안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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