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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장동을 밟은 도전의 명수 ‘이재명’ 그는 왜 웃지 못했을까?

이승표 기자 입력 2021.10.11 14:31 수정 2022.10.22 09:58

이승표 본지 경주·영천 본부장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실시될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를 선출했다. 이 후보는 누적 득표율 50,29%로 힘겨운 과반을 넘기면서 그의 15년 정치사에 큰획을 그었다.

돌이켜 보면 이 후보는 가난한 탓으로 중·고를 다니지 못한 채 13살 때부터 공장 근로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늘 도전 그 자체였다.

가난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성장한 흙수저 정치인인 이 후보는 경북 안동의 청량산 아래 도촌리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9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가난을 이겨내고자 고향을 등진 그의 가족들이 성남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이 후보의 운명은 변해갔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처럼 학교로 가는 대신, 가내수공업(목걸이)과 프레스 공장(야구글러브 생산)에서 이른바 공돌이가 되면서 세상을 맛보기 시작했다.

이때 이 후보는 가난을 벗어 날려면 공장의 관리자라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독학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낮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잠을 줄이며 책과 싸우면서 독학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공원 이재명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학력을 인정받는 고입과 대입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했다. 후에 중앙대 법대 장학생으로 입학한 이재명은 두 번의 도전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그는 생애 최대 영광을 안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온 가족이 가난을 이겨내고자 열심히 살아온 역경 속에서 얻은 값진 영광이었기에 그와 가족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그는 그때부터 세상을 더 크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판검사를 할 수 있는 성적을 얻고도 변호사의 길을 택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약자와 강자의 그늘을 체험한 그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들은 게 영향을 미쳤다고도 전해진다. 사회정의를 위해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한 것이다. 고된 삶을 살아오면서 뿌리 깊게 남은 약자의 설움이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1995년 성남시에서 시민단체를 창립하고 시민운동가로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 후보는 성남시장과 국회의원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다행히 2010년 삼수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후보는 재선을하고도 만족하지 못했을까, 다시 경기도지사에 민주당 후보로 과감히 도전해 성공했다. 중앙과 전국정치무대로 다가간 계기를 만든 것이다.

도지사에 당선된 후 그는 ‘전도민 기본소득제’를 추진했다. 공교롭게도 이 나라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를 맞게 되면서 이는 현실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그의 존재감에 시선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내 전 계곡의 불법 점유시설의 강제 철거와 민간 병원 수술실의 CCTV(감시카메라) 설치 등 창의적이고 물러섬이 없는 강력한 행정력을 과시하면서 이재명만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어 나갔다.

그 결과 “이재명은 한다면 합니다”라는 구호가 회자 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정가는 ‘정치인 이재명을 지지하는 집단이 형성되는 촉매제가 되게 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그 촉매제로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등극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적 후광이나 연고,조직,자금도 없다는 그가 이룬 이 역량은 도대체 어디에서 솟구쳐 나왔을까.

그 역량을 짚어보면 이 후보가 도지사 취임 후 공직선거법과 여배우와의 스캔들 등 거친 난관을 어렵사리 이겨 낸 데서 국민들은 이재명의 역량을 가늠케 한다. 이도 잠시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이 후보는 자신과는 관련이 없음이 입증돼야 하는 새로운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성남시장 재직 때 집행된 사안이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음이다. 그러나 그는 대장동을 밟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대장정에 올랐다. 참으로 대단한 역량이 아닐 수 없다. 도전의 명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그는 “토건세력과 유착한 정치세력의 부패 비리를 반드시 뿌리 뽑고 부동산 공화국이란 오명도 반드시 없애버리겠다”며 힘주어 말했다.
이는 대장동 관련 의혹은 자신과는 관련이 없음을 국민 앞에 분명히 하고, ‘대장동을 밟고 나아가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난 10일 실시된 마지막 3차수퍼위크(대의원, 권리당원 투표)의 결과가 그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한다. 이날 발표에서 그는 앞서 실시된 1.2차 수퍼위크의 승리와는 달리 득표율이 28,3%에 그쳤다. 62,37%를 거둔 2위 이낙연 후보에게 더블스코어 차로 대패했기 때문이다.

누적 득표로 대권후보로 선출되긴 했지만 이의 영향이 어디까지 어떻게 미칠지가 숙제로 남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정가의 뒷말이다. 또 2위를 한 이낙연 후보 측이 경선 승복 대신 경선불복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예의주시하고 있음도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는 분석을 덧붙이고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이 후보가 3차 수퍼위크에서 얻은 득표율이 이를 잘 방증하고 있다”며 이 후보가 대장동과 관련 있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순간, 굴곡이 많았던 지나온 삶의 여정을 생각하며 감정에 젖어서 였을까.
이날 이 후보는 힘 있는 집권 여당의 대권후보로 선출된 영광스런 자리에서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도 환한 웃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왜 웃지 못했을까, 아니면 웃을 수가 없어서 그랬을까...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궁금해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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