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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첫 서원 ‘이산서원’, 150년만 복원 완료

정의삼 기자 입력 2021.10.13 10:08 수정 2022.10.22 10:13

퇴계 직접 쓴 이산서원원규 ‘전국 서원 표본’

↑↑ 이철우 지사와 장욱현 시장이 경지당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영주시 제공>

우리나라 서원의 규약(원규.院規)의 효시 영주 이산서원(伊山書院·경상북도 기념물)이 이건 복원됐다. 1558년(명종3)에 창건해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150여년 만이다.

지난 2012년 이건 계획을 확정한 이산서원은 총 사업비 24억 원을 투입해 기존에 있던 경지당과 지도문을 이건하고 발굴용역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된 사묘, 숙소인 성정재와 진수재, 학당인 양정당과 누대인 관물대 등을 모두 복원했다.

이날 준공식은 이산서원이건복설추진위원회(회장 김백) 주관으로 13일 오전 10시 이산면 석포리에서 △1부-이산서원 복설 준공식 △2부-이산서원에 배향된 선현들에 대한 제향을 봉행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원래 이산서원은 퇴계 이황선생만 배향했으나 이번에 복설하면서 유림들의 공의를 모아 이산서원의 설립과 유지에 공이 큰 소고 박승임과 백암 김륵 선생을 추배해 함께 제향을 봉행했다.

이날 봉안고유제 초헌관에는 장욱현 시장, 아헌관에는 의성유림 김창회 선생, 종헌관에는 봉화유림 이종태 선생이 각각 맡아 제향을 올렸다. 또한 인근 경북 북부 지역 유림들도 참석해 봉안고유제를 함께 지냈다.

본래 이산서원(伊山書院)은 이산면 원리(지금의 휴천1동)에 1558년(명종 3)창건돼 1574년(선조 7) 사액을 받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1614년(광해군 6)이산면 내림리로 이전했으며, 이후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 훼철됐다가 1936년 경지당과 지도문만 복원했다. 2008년 영주댐 건설로 이산서원이 수몰될 상황이 되자 현재의 이산면 석포리에 당초 규모로 이건 복설하게 됐다.

퇴계는 이 서원에 대해 손수 이산서원기(伊山書院記)를 쓰고, 원생들이 지켜야 할 행동지침과 공부하는 방법, 학문의 목표 등을 소상하게 담은 원규를 함께 만들었다. 이는 우리나라 서원 원규의 효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서원 운영의 정형화를 제시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아 전국적인 모델이 됐다.

또한 퇴계는 주 건물인 경지당(敬止堂)을 비롯, 동재인 성정재(誠正齋), 서재인 진수재(進修齋), 관물대(觀物臺), 지도문(志道門) 등 이름도 손수 붙였다. 거기에다 이산서원은 퇴계학문을 집약하는 성학십도(聖學十圖)의 판각을 보관하고 있었던 서원으로 더욱 유명하다.

장욱현 시장은 “이산서원의 이건복설 준공식 및 봉안고유제 봉행을 시작으로 그 동안 끊어졌던 서원의 전통을 되살려 원래 역할인 존현양사(尊賢養士)의 책무를 다해 영주의 선비정신을 함양하고 참된 인성을 기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정의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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