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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故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기리며

이승표 기자 입력 2021.12.26 11:33 수정 2021.12.26 19:06

이승표 남부취재본부장


12일 27일 오늘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제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43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79년 10월 26일 그는 측근 중의 측근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이 쏜 흉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비통함에 젖은 국민들의 슬픔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영면하고 말은 것이다.

5.16혁명을 주도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올라 경제부흥과 민족중흥을 주창한 그였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슬로건은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였다. 또 가가호호 붙혀진 벽 기둥의 표어도 ‘일소하자 공짜 생각, 북돋우자 근면 정신’으로 기억된다. 돌이켜 보면 어린 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준 구호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재건의 노래를 들으며 뛰어 논 추억이 엊그제 같다. 그 가사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둥둥둥 울려오는 재건의 큰북소리에, 조국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겠는가, 쾌차게 크나큰 영광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흐야 영차영차 어흐데야 어흐야 영차영차 어흐데야, 삼천리 방방곡곡에 뭉치자 재건의 동지....“ 그 구절도 반세기를 훨씬 넘긴 지금까지도 4-H 운동을 한 나의 가슴 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의 괴뢰도당이 일으킨 6.25 전쟁은 이 작은 한반도를 남과 북 두 쪽으로 갈라놓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정전 70여 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남과 북은 긴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즈음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보다 뒤처져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 박정희 대통령은 더 이상 주적의 침략을 막아내고 경제발전을 꽤해야 하는 숙명적인 과제를 안게 됐다. 
주제는 이른바 ‘부국강병(富國强兵)‘ 이었다.

당시 세계 제일가는 빈국이자 허약했던 이 나라의 경제부흥은, 열악한 국가재정을 감안하면 엄청난 과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고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통한 민족중흥의 꿈을 국민과 함께 실현하고자 결심했다. 독일과 미국을 오가며 고개숙인 끝에 '경제개발 5계년 계획'이란 거대한 국정기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고 박대통령께서 직접 작사했다는 이 새마을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 시절 궁핍했던 우리 국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잘 읽을 수 있음이다.

이로 인해 잘살아 보자는 이 농촌 계몽운동은 전 국민이 하나 되는 국민운동으로 승화되어 이 나라경제부흥의 횃불이 되었다.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포항제철과 현대중공업, 그리고 월성 원자력 발전소를 보더라도, 고 박 대통령께서 일군 철강산업과 중화학, 원자력에 이르는 산업화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시선은 추앙 그 자체 그대로 이다.
 
반면, 고 박 대통령의 야심작인 경부고속도를 비롯한 국가의 중점 사업이 야당의 반대로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뇌리에는 살기 조차 힘든 그 시기에 정치발전을 통한 민주화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권력을 다투는 정치인들에겐 불편함이 있었을지 몰라도, 국민들이 누리고자 하는 생활의 자유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했기에 우리 국민들이 경제강국을 주도한 대통령의 깊은 국정철학에 공감해 솔선수범 했을 것이다.

집권 18년 동안 그가 이룬 업적도 이루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지구상 제일가는 빈국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훌쩍 넘게 하면서 국민과 함께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솟게한 이 나라 경제발전의 원초적 주인공이 아니었던가....

우리 국민들을 잘살게 한 현대사를 빛낸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오죽하면 이념이 달라도 너무 다른 좌파 정당의 대선후보가, 보수를 찾아 그를 찬양하면서까지 표심을 훔치려 읍소했을까. 새 역사창조로 국민들의 자부심과 국격을 드높인 그의 공적을 좌파도 인정하고 있음을 잘 대변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런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촛불을 든 좌파 정권이 적폐 청산이란 구호 아래 4년 9개월이란 길고도 긴 세월을 고독과 고통속에서 감당케 했다.  남자도 아닌 여자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두 분 대통령과 옥살이를 비교해도 갑절을 더 감당한 것이어서 지지국민들의 애처로움은 훨씬 더했다. 

우리 국민들의 찌든 가난을 일소하고자 조국 근대화를 외치며 민족중흥이란 위대한 위업을 창조한 고 박 대통령과 국민의 천사로 존경 받았던 육영수 여사께서 국가에 이바지 한 공적과 헌신조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리한 법정 앞에서 무시당한 모양새는 지역 정가와 지지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다행이 지난 24일 국민대통합이란 이유로 사면을 받긴 했어도 그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훗날 이 정권이 ‘친북엔 관대하고 보수엔 관대 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적폐 청산이 아닌 적폐 양산의 정권’이었다는 오명을 역사 앞에 남기지 않았으면 한다.

'부국강병'으로 조국의 국력을 튼튼히 하고 국민을 잘살게 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위업이 남긴 위대한 공적이 새삼 기려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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