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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만사 보기 나름

오재영 기자 입력 2022.02.10 09:05 수정 2022.02.10 10:30

김시종 시인·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 김시종 시인

세상만사는 보기 나름이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을 퇴화로 보느냐? 성장으로 보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흥적으로 퇴화라고 선뜻 말하리라.

올해 81세가 된 필자(나)는 주저 없이 퇴화가 아니고, 성장이라 자신 있게 말한다. 이팔청춘 시절부터 보행(步行)으로 인생을 일관되게 살아온 나는 70세가 넘자 무릎 관절이 몹시 닳아 보행이 아주 불편하여, 용한 의원으로 소문난 M정형외과를 찾았더니, 양 무릎관절을 촬영한 결과, 나이 관계로 수술은 유보됐지만, 관절에 뼈주사를 맞아, 임시변통은 됐지만, 지금도 치료를 받고, 보행이 불편하다.

젊어선 수 십리 걷는 것은, 일도 아니었는데, 업보가 쌓여, 노년에 고생을 면할 수 없었다. 누구를 원망하랴? 나의 치기 어린 만용 때문인데…., 사람은 너나없이 심은대로 거둔다. 

하늘은 시련만 주시는 게 아니라, 피할 길도 마련해 주신다. 자신만만하게 건강인이라 자처하던 필자가 78세가 되던 해에 지팡이와 종신 의남매를 맺었다. 노인들 중엔 지팡이 짚는 걸 남사스럽게 생각하여, 절룩이며 고통스럽게 사는 걸 보고, 안 그래도 웃음이 많은 필자는, 참느라고 조용히 웃었다. 필자는 처음 지팡이 짚고 나니, 기운이 펄펄 나고, 지팡이야 말로 숨은 국보라는 걸 점감했다. 나는 지팡이를 짚으면 힘이 넘치고, 자신감이 생긴다. 다리 아픈 사람에게 가장 용한 명의는 지팡이라고 자신 있게 외친다.

나는 81세 나이에 걸맞게 성장(!)한 늙은이가 되었다. 지난날 내가 심심풀이로 점을 해봤더니, 내겐 ‘숨겨 논 애인’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숨겨 논 애인은 없었다. 내겐 드러난 애인은 있다. 남에게도 떳떳이 말할 수 있다. 나의 드러난 애인은 사람 아닌, 평생을 동고동락한 시(詩)다. 

시(詩)도 내 말에 선뜻 동조하리라. 지금 생각하니, 지팡이가 내게 숨겨 논 애인이었다. 늘그막에 어딜 가나 나와 동행(同行)한다. 다만 잘 때는 지팡이가 노숙한다. 지팡이는 충직한 나의 보디가드다. 지팡이를 늘상 애용하지만, 휘두르지는 않으리라. 다리가 아프면서도 아직까지 지팡이와 동지가 못되고 남으로 지내는 이들에게 어서 지팡이를 짚으라는 복음(福音)을 전하는 어느새 전도사가 됐다.

세상만사는 보기 나름, 생각하기 나름이다. 길거리에서 제자들을 만나면 지팡이를 짚은 나를 보고 놀란다. 나라고 만년건강일 수 있나? 지팡이를 짚고, 자립(自立)하는 늙은 스승을 보고, 선생님이 오래 우리 곁에 계셔,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려 깊은 제자들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임인년 새해를 맞아, 세명일보 애독자들이여, 다복(多福)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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