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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무 시집보내기

오재영 기자 입력 2022.02.20 08:16 수정 2022.02.20 13:54

이만유 전 향토사연구위원


나무시집보내기
희망을 가득 품은 밝고 둥근 달이 떠올랐던 임인년(壬寅年) 정월 대보름,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달집태우기 등 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음력 정월 보름날을 상원(上元)이라 해서 옛적에는 설날보다 더 성대한 명절로 보냈으며 여러 가지 풍속이 있었다. 그중 가수(嫁樹), 즉 '나무 시집보내기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 민족은 심성이 착하고 정이 많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추운 겨울을 나는 새들을 위하여 나뭇가지 끝에 까치밥을 남겨 놓거나, 노을이 붉게 물드는 저녁에 밭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는 농부가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소에게 미안하다며 소와 함께 짐을 나누어 지고 가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미물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하여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라고 했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씨앗을 뿌릴 때도 한 구덩이에 3개를 뿌린다. 하나는 하늘을 나는 새를 위해, 하나는 땅에 있는 벌레를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먹기 위함이란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며 한 가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았다.

옛 문헌에 '나무 시집보내기'는 정월 초하룻날이나 대보름날 새벽닭이 울 때에 과일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둠으로써 그해에 과실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시집보내는 방법은 Y자형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우는 형태가 일반적이나 일부 지역에서는 오곡밥이나 만두를 꽂아두기도 한다. 

돌을 끼울 때 “해마다 새신랑 맞으니 사주에도 없는 자식을 난들 어찌하리오”하거나, 욕설로 도색 주술을 외기도 하는데 상스럽고 음란한 말일수록 효험이 좋다고 한다. 또 과실이 많이 달리기를 바라며 도끼로 나무를 찍는 시늉을 하면서 “올해 열매 많이 안 열면 내년에 잘라 버린다!”라고 위협하기도 한다고 했다.

과수는 대체적으로 한 해 수확량이 많으면 영양 손실이 커 그 이듬해는 수세가 약해져서 열매가 거의 열리지 않는 해거리를 한다. 그래서 나무 시집보내기는 이를 피하여 해마다 많은 결실을 얻기 위한 바람에서 하는 것이다.

사람도 혼인을 하면 자녀를 낳고 사랑을 하면 행복감을 느끼듯이 나무를 혼인을 시키고 사랑을 하게 해 기분 좋게 하여 성장을 촉진하고 열매를 많이 달리게 하려는 농부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하나의 성적인 모방주술행위(模倣呪術行爲)로서 어떤 현상을 모방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려는 주술로서의 나무 시집보내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 시집보내기는 과학적으로도 잎에서 광합성을 한 영양분이 뿌리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해 열매를 많이 열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추나무는 5월 단옷날에 시집을 보내고 도끼 뒤쪽으로 나무를 고루 잘 두드리면 열매가 떨어지지도 않고 크고 맛도 좋아진다고도 하는데, 이것 역시 도끼에 신비한 잉태의 힘이 있다는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도끼에는 마귀를 쫓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작은 도끼 서너 개를 몸에 지니기도 하였다. 특히 혼인 첫날밤 신부는 아이를 잉태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도끼를 요 밑에 깔아두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나무는 여성이고 돌과 도끼는 성교 혹은 남성의 상징으로 믿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스개 이야기 하나.

옛날에 어떤 큰 부자가 고대광실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 마당에 몇백 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올해도 은행이 많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커다란 돌로 나무 시집보내기를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밤마다 꿈에 은행나무가 수염이 허연 노인으로 변신해서 나뭇가지에 끼워 넣은 그 돌을 들고 와 주인의 사타구니에 끼워 넣기를 하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잠에서 깨어나는 고통을 당했다. 

알고 보니 은행나무는 암수가 있는데 수나무에다 나무 시집보내기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래서 나뭇가지에 끼웠던 돌을 빼내니 다시는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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