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윤석열 당선자에게 기대하는 국민들의 깊은 뜻은?

이승표 기자 입력 2022.03.14 10:46 수정 2022.03.14 10:46

이승표 남부취재본부장


제20대 대통령에 선출된 윤석열 당선인은 1960년 생이다. 1남 1녀 중 장남인 그는 서울 대광초를 다니든 시절부터 유달리 키가 크고 덩치가 큰 탓에 왜소한 체구로 따돌림을 받는 약한 친구들의 도우미를 자처해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부터 보스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학창시절 당선인은 스포츠를 즐겨 했으며 그중에서도 유난히 축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대문운동장에서 스케이트를 배우기도 했다. 또 농구는 물론 야구도 잘해 야구명문인 충암중학교로 전학 갔을 때는 선수 제의도 받을 만큼, 만능 스포츠맨이었다는 것이 당시 함께 했던 친구들의 전언이다.

뿐만이 아니다. 대학시절 춤과 노래도 잘 했으며 고고장 미팅도 솔선해 주선하는 등 학우들의 분위기 메이커여서 인기도 짱이었다고 한다. 대선 유세장에서 선보여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의 어퍼컷 세러머니도 아마 이 때의 남아 있었던 끼에서 돌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운동이 끝나면 늘 배고픈 친구들을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주는 등 그의 베품에 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는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선행에 대한 내색은 절대 하지 않았다는 게 그 시절 친구들의 증언이고 보면, 어린 시절부터 ‘속이 깊은 남자’였음도 알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도 속 깊은 그의 인성을 잘 읽을 수 있다.

제5공화국이 태동할 즈음인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윤 당선인은 법대 ‘형사법학회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당시 교정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모의형사재판’에서 검사역을 맡았던 윤 당선인은 보안사령관으로 광주사태를 지휘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여기에서 보듯 윤 당선인이 생각하는 헌법적 가치와 기준은 일찍부터 냉철했다고 여겨진다.
그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트레이드마크가 된 '공정과 정의 상식'도 여기에서 출발한 듯하다.

이로 인해 당시 대학생이었던 윤 당선인은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도망자 신세가 돼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강릉의 외가로 도피하게 된다. 반정부적 성향의 학생들을 모조리 정치범으로 몰아 구금하던 시기여서 최선이자 최후의 선택은 도망자가 불가피 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당선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전이자 대선후보가 된 지난해 11월 광주방문 직 후 전 대통령의 업적을 두고, “5·18을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평해 논란을 빚은 바 있어 이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윤 당선인은 사람을 챙기는 데는 이유를 불문하고 솔선했다고 한다. 1990년 지방 출신의 한 대학 동기의 1차 사법고시 시험 날 도시락을 준비해 새벽에 전해준 사연도 남다르다.

또 자신의 8번째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앞두고도 당시 친구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하게 되자,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된 친구의 사정을 헤아려 이틀 동안이나 친구 아이들의 밥을 챙겨줬다고 전해지는 사연에서도 인간 윤석열의 진면목을 다시 볼 수 있게 한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하고 후에 2차 시험만 8번 봤다. 그 이유에 대해 당선인은 여러 가지 사유를 들고 있지만, 그 중 하나로 이 대목이 소개될 정도이니 '의리의 사나이 윤석열'이란 별칭이 유난히 돋보여 지기만 한다.

잔잔한 윤 당선인의 이런 인정은 작고한 외할머니와 모친의 영향이 컸다고 전해진다. 그의 외할머니는 18세 때 강릉으로 시집와 19세에 남편을 잃었다고 한다. 이 후 홀로 자식을 키우기 위해 포목장사를 시작했는데, 강릉지방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포목상이 되어 남다른 부까지 지녔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외할머니는 부를 자기만의 부로 간직하지 아니하고 가난한 영재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주위의 약자들을 위한 나눔을 숨죽여 실천하는 데 절대 인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학자가 우리나라 3대 이상 누려 온 만석군 집안의 내력이 궁금해 조사 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 집안에서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보시’였다는 것. 즉 선대들이 줄곧 베품을 즐기며 선행을 많이 했더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심이 민심 되고 민심이 천심을 얻어야 하늘이 천자를 내린다고 했다. 윤 당선자의 가족사가 지니고 있는 작고 큰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여기에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9일 국민 앞에 "공정과 정의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주제의 약속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윤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며 수 없이 천명했다. 이의 깊은 뜻이 잘 헤아려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평소 자기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즐기며 살아 온 윤 후보를 믿고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들의 깊은 뜻은, 국민을 위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잘 실천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