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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선비 정신과 문인

오재영 기자 입력 2022.03.28 14:08 수정 2022.03.28 15:12

전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장 이만유


窮不失義 達不離道(궁불실의 달불이도)
아무리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의로움을 잃지 말며
거침없이 잘 나아갈 때도 정도에서 벗어나지 말라.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글이다.

몇 년 전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 취임사 중에 “문인은 선비이고 선비는 명예를 존중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평소 필자도 “시인은 이슬을 먹고 사는 선비다”라고 생각해온 터라 공감하였기에 선비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선비란 곤궁에 처해도 의(義)를 잃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사람”이라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학식과 덕망을 갖추고, 예절을 알며, 말과 행동이 같으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불의에 대항하며, 정의로우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궁극적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선비란 그 시대의 지성인, 지도층, 엘리트로써 나를 다스릴 줄 알고 남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자기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믿는다.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로 선비(양반)는 물에 빠져도 개 헤엄을 치지 않는다.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안 쬔다. 선비는 비가 와도 뛰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체면이나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으나 그 안에는 자기 관리와 정도를 걷는 나름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옛날 선비들은 기개가 대단했다. 나라에 중난(重難)한 일이 일어나 간(諫)할 때 그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도끼로 나를 죽여 달라는 결의(決意)를 나타내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기도 했다. 다시 말해 상소(上疏)할 때에 도끼를 가지고 대궐 문밖에 나아가 엎드려 바른 소리를 내어 죽기로 직언할 수 있는 기개를 보이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용기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지부상소를 올린 인물 중에 중봉 조헌(重峯 趙憲, 1544∼1592년)선생이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한 해 전인 1591년(선조 24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겐소를 사신으로 보내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릴 것을 요청해오자 선조에게 지부상소를 올려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요구하며 대궐 밖에서 사흘간 버티며 뜻을 관철하려 했다.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1833∼1906)선생은 1876년(고종 13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해 조약을 강요한 일본 사신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의 목을 베라고 상소하면서 도끼를 들고 나타나 병자지부복궐소(丙子持斧伏闕疏)를 올렸다.

이렇듯 조선의 선비들은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요. 도를 배우고 말은 번듯하게 하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言行一致, 知行合一) 선비가 아니라고 하였고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잘 헤아리고 행동함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선비라고 했다.

오늘 이 시대의 선비는 전문지식과 도덕적 양심을 가지고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실천하는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공론을 향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의롭고 정도를 가며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시대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진정한 선비는 살아있는가? 아니면 죽었는가? 선비의 꿋꿋한 기개를 뜻하는 사기(士氣)의 의미는 변질 사용되고 있지만 사기를 가지고 공사 간에 잘못이 있으면 원로, 사림(유교 단체), 문인이 지적하고, 깨우쳐 주고, 혼내서 정도를 가게 해야 하는데 침묵하고 있는 것은 존재 의의가 없고 자기 할 일을 다 못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문인은 선비다. 그리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 말이 있다. 문학작품이 광풍제월(光風霽月)처럼 천성이 맑은 선비의 마음으로 인생과 자연을 노래하고, 선현들을 찬양 칭송하고, 웃고 울며 아파하는 사람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의미 있지만 때로는 기개를 가진 문인이 되어 선비 정신으로 쓴 글들이 혼란과 불신, 불의의 세상을 바로잡는 매의 눈이 되어 정의롭고 바른 사회를 이룩하는 역할자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근래 문경에서 문협이 자기 사업을 다른 단체가 슬쩍 가져가는 일 등이 발생하여 이를 시정하라, 문협의 정체성 확립, 리더로서의 합당한 역할, 공익적인 활동, 주인의식을 갖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랬더니 리더십 부족으로 문협이 갈등과 혼란을 초래한 당사자들, 불의하고 공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편파적 편향적인 사고로 떼를 지어 자기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또 문제 발생 원인 제공자가 오히려 쌍욕을 했는데 그런 자의 편에 서서 적반하장격으로 바른말 옳은 말을 한 사람을 비상식적이고 악의적으로 징계하는 횡포를 보였다. (추후 내용 공개 위계)

조선조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 중 죽임을 당하니 삼족을 멸하는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그 시체를 거두는 이가 없었다. 이때 영월 호장이던 충신 중의 충신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가 모두 만류하였으나 “신하 된 도리로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라며 단종의 시신을 수습, 장사지내면서 “爲善被禍吾所甘心(위선피화오소감심)”, “좋은 일을 하고 화를 입는 것을 나는 달게 받는 바이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이 언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비겁하고 용기 없고 불의한 문인이 되지 말며, 표리부동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며, 문인으로서 자존심을 잃지 말라.

오늘따라 “문인은 선비다”는 말이 무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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