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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진정한 교양교육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2.05.02 10:27 수정 2022.05.02 10:35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시인


요즘 대학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 노력의 결과 중 하나가 교양과목의 다양화다. 국어 관련 과목만 하더라도 과거는 ‘교양국어’ 정도로 거의 통일된 이름을 썼다. A대학에 다니다가 B대학으로 옮겨 가거나 재입학을 하더라도, A대학에서 이수한 ‘교양국어’ 과목을 B대학에서 인정받는 추세였다. 왜냐하면 과목의 명칭이 대동소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교양국어’로 불리던 국어 교양과목 명칭이 ‘말하기 듣기’, ‘생활언어’, ‘한국어’, ‘한국어건강생활’, ‘한국어능력’ 등으로 다양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A대학에서 ‘교양국어’를 이수한 학생에게, B 대학이 ‘말하기 듣기’라는 국어교양과목을 이수했다고 허락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과목 명칭을 엄격하게 제한하게 되면 대학마다 다른 이름의 교양 교과목이 문제고, 그렇다고 폭넓게 인정하게 되면 특정 교과목이 갖는 고유성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이 갖는 여러 문제에 관해서 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대학생의 교양교육 절대 부족과 시험성적만 좋으면 교양 과목쯤이야 하는 교육환경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의 글로벌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여러 언론보도도 있었다. 미래지향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재 그 학생의 성적이 어떠하냐가 그 학생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사회적 분위기는 교양과목이나 인성교육보다는 우선 당장 평가대상인 시험성적에 매달리게 한다.

몇 년 전에 새로운 실험이 하나 있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국내 대학에서 입시에서의 절대적 선발기준이었던 ‘학업성적’만으로는 신입생 선발을 하지 않고, 학업성적이 아닌 다른 요소를 입학전형에 가미하면 어떻겠냐 하는 제안이었다. 그런 선발기준 요소는 ‘창의성’과 ‘사회봉사경험’ ‘영재성’, ‘탐구력’ 같은 항목이었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우선 1차에서 학업성적으로 정원의 몇 배를 선발한 후, 2차에서 수학, 과학 등의 문제 풀이 능력을 평가하여 최종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대학들의 일반적인 입시행태가 학업성적만이 절대적 기준이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우수한 학생선발을 위한 그와 같은 조치는, 전형방식의 일률성에 대한 단점과 자율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여러 대학에 다양한 전형 방법 도입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전국의 과학고나 영재고 학생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오직 시험에만 매달리는 것을 보고 ‘시험선수’라는 말이 유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시험성적만으로 입학생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가장 먼저 실천으로 옮긴 사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학생들이 하는 공부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지 창의성을 가꾸기 위해서나 탐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수긍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고교내신은 대학전공과 연결되지 않는 단순 암기 위주가 대부분이며, 과학고를 졸업하고 법대에 진학하거나 외국어고를 졸업하고 의대를 가고자 하는 현상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소위 ‘시험선수’인 그들은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본보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이러한 교과 외적인 요소를 평가항목으로 넣자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기는 했었다. 몇몇 대학에서는 선도적으로 특별한 전형 요소를 만들어 독특한 자기대학 만의 필요 인재를 선발하려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학업성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방식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는데, 그 까닭은 현재의 교육시스템에 충실할수록 더욱 ‘학업성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이 공평한 원칙과 선발대상에 대한 형평성을 고수하는 범위 내에서, 나름대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기준에 따라 학생을 뽑을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특별활동 동아리를 통한 학생의 봉사활동이 장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자기의 아들과 딸이 공부보다는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선뜻 허락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아직 우리 사회가 이상적 환경에 도달하지 못한 증거다.

어쨌든 대학에서의 교과교육보다는 인성교육을 포함한 교양과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앞으로 더욱 확대되어야 바람직하다. 운전교육을 단순히 운전기술교육만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교육을 단순히 ‘학업성적’을 올리는 활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운전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 ‘운전 예절’을 가르쳐야 진정한 운전 교육을 한다고 할 수 있듯이,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지 않는 학업성적만을 향상하고자 하는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시험선수’가 아니라 다양한 재능과 창의력을 발굴하고 장려하는 ‘진정한 교양교육’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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