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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문경새재오픈세트장 건립 비화(祕話)

오재영 기자 입력 2022.11.29 08:47 수정 2022.11.29 10:02

사극 전용 촬영장 각광, 관광객 600만 시대 열다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

고려궁성(宮城)만월대(滿月䑓)전경 세트장
고려궁성(宮城)만월대(滿月䑓) 정전(正殿) 회경전(會慶殿)세트장
문경 관문 주흘관

현재의 세트장, 광화문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은 당초 ‘한국방송공사’가 고려시대물을 촬영하기 위하여 사극 전용 촬영장으로 2000년 2월 23일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뒤 용사골에 건립한 것이다. 당시‘KBS 문경촬영장’ ‘문경새재촬영장’ ‘태조왕건 촬영장’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 촬영장은 문경시가 부지 6aks 5,755㎡와 왕건교를 설치하는 비용 등 4억 원을 제공하고 KBS가 공사비 28억 원을 투입하여 총사업비 32억 원으로 왕궁 2동, 망루 2동, 기와집 42동, 초가 40동, 기타 13동을 건립한 국내 최대규모의 사극 촬영장이 조성되었다. 이로써 문경시는 21세기 새천년 웅비의 나래를 펼쳤다.

용사골은 조선 시대 군부대 격인 조령진(鳥嶺鎭)이 있었던 곳이며 지방 산성을 수비(守備)하는 수장인 별장의 품계가 9품 내지 7품 무관을 배치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문경관문과 조령산성은 왜군으로부터 한양을 지키기 위한 군사 요충지였음으로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숙종 때 설치한 것으로 보며 영조 때는 무관 4품을 배치했던 곳이었다.

당시 KBS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촬영장을 짓기 위해 물색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가지고 TF를 구성하며 유치경쟁에 돌입했다.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거나 정권 실세를 동원하는 파워 게임도 있었고 자기 출신 지역에 유치하여 치적으로 삼으려는 유명 인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문경, 안동, 부안, 제천 등이 치열한 경합을 치른 후 문경으로 최종 낙점되어 문경새재 용사골에 촬영장을 짓게 된 것이다.

조선 시대 영남대로의 중심지며 국방을 수호하던 유서 깊은 군사 요충지 문경새재에 사극 촬영장이 들어서는 것도 의미 있지만, 용사골(용상골) 이름 그대로 용이 승천하듯이 왕(용)이 사는 왕궁이 세워지는 것은 풍수지리 및 역사적 인연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촬영장 조성 후 첫 기획물인 대하사극으로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태조 왕건’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에 후삼국의 세 영웅으로 궁예, 왕건, 견훤이 있는데 그중에 후백제 왕 견훤이 문경 가은 출신이라 필자가 문화관광해설사 활동 시 촬영장에서 해설할 때 우스갯소리로 ‘석탄산업으로 한때 잘 나가던 문경이 폐광 이후 살아 길길이 막막해졌는데 하늘나라에서 견훤 할배가 고향 후손들을 불쌍히 여겨 촬영장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셔서 지금 관광객이 구름처럼 문경으로 모여 와 굴뚝 없는 관광산업으로 잘살게 되었다’고 하기도 했었다.

실제적으로 촬영장이 문경새재 용사골에 유치된 이유는 사극 전용 촬영장으로 제 조건이 유리하고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요인은 촬영장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조령산 산세, 특히 촬영장 뒤편 장군봉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서기가 서려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며 고려 왕궁 만월대가 있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현 개성)의 송악산과 닮았다는 것은 물론이고 사극 촬영에 장애가 되는 포장된 길이 아닌 600년 된 옛길 문경새재 황토 비포장길이 있어 사극 촬영지로 더 이상 경쟁상대가 있을 수 없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필자가 해설했을 때 ‘개성에 가지 않고도 개성의 송악산과 만월대 궁궐을 볼 수 있으니 여러분은 오늘 문경에 옴으로서 개성 여행 경비 수 십만 원을 버는 횡재(橫財)를 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였다.

거기에 더해서 사극 드라마는 편당 제작비가 많이 드는데 문경새재에는 이를 절감할 수 있는 기존의 산성과 관문 등 문화유적이 있어 추가 세트가 필요 없고 현대물인 전주(電柱), 콘크리트 건물 등이 없어 촬영 기사가 카메라를 360도 막 회전해서 촬영해도 아무 장애물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항공노선이 아니고 인근 군 부대 군사 비행 구역도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 소음과 차 운행 통제로 차량 소음이 없어 동시 녹음이 가능하다는 장점 등으로 환경적, 경제적 유리성이 크다는 이점이 있다.

뒷 이야기이지만, 촬영장 설계를 할 때 부지 안에서 풍수지리상 드라마 성공을 위하여서는 왕궁터를 잘 잡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어느 곳에 둘까 고심하다가 유명 지관(地官)에게 의뢰하여 지금 왕궁이 있는 곳으로 정하였다고 하였다. 그 풍수 값으로 3,000만 원이 들어갔다고 하며 초가지붕 관리를 위해 이엉을 가는데도 연 6,000만 원이 비용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촬영장 건립의 경제적 효과로는, ‘태조 왕건’ 드라마가 시작할 때 150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시청률이 60.2%로 높았고 ‘사극의 신기원을 열었다’, ‘드라마 사상 전무후무의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호평을 받게 되어 200부작으로 늘여 방영하였다. 이에 따라 영상의 힘, 매스컴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이 드라마가 방영되자 문경에 연간 관광객 수가 50만 명 정도에서 방송을 시작한 그해 100만 명이 되고 해마다 100만 명씩 늘어 500만 명 체제로 유지하다가 얼마 뒤 경이적인 600만 시대를 열었다. 

이로써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문경이 새롭게 발전하고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위’의 위상을 가진 국내 관광의 중심이 된 것은 촬영장 유치가 큰 분기점이 됐다. 당시 유명 경제전문가가 이 촬영장으로 인한 간접 경제 유발효과가 연 500억 원에 이르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촬영장이 6,000억 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했다.

당시 KBS가 ‘태조 왕건’ 드라마를 기획한 의도는 자주통일 의식 고취 및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 드라마를 통화여 합리화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는 설도 있었다. 그 당시 이를 접한 필자는 관광객들에게 이렇게 해설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 즉 당나라의 힘을 빌려 통일한 것이라 진정한 자주통일이 아니고 어떻게든 당나라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통일인 데 반하여 태조 왕건은 스스로 힘으로 후삼국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한 자주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지상목표가 남북통일인데 이 통일 역시 태조 왕건처럼 자주통일이 되어야 한다며 우리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서 더 훌륭한 자유민주국가를 만들고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튼튼하고 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었다. 

이렇듯 우리가 재미나 흥미로 보는 드라마 하나에도 국가이념이나 통치자의 철학이 반영되고 대국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문경 가은읍 석탄박물관 옆에 있는 ‘가은오픈세트장(연개소문촬영장)’에서 촬영되어 2006년 7월부터 1년간 100부작으로 방영된 SBS의 대하사극 ‘연개소문’ 역시 중국의 문화침략, 다시 말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왜곡하고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수(漢水) 이북을 자기들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기도로서 ‘동북공정’을 본격적으로 추진될 때 방영되어 그 실상을 알리고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이 작은 나라, 적은 군사로 대국인 수나라, 당나라와 싸워 이긴 위대한 역사를 교훈 삼아 우리 국민이 분발, 정신 무장하여 동북공정에 대비하자는 의도가 깔린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문경시와 KBS가 촬영장 건립시 계약으로 10년 뒤인 2009년 문경시로 촬영장 시설 모두를 이관한다고 하였고 문경시는 이를 받아 고려촌으로 재개발 활용한다고 하였으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2008년 아쉽게도 국내 유일한 고려 시대 촬영장인 궁궐 만월대(滿月臺) 세트장을 허물고 많은 예산을 투입 조선 궁궐 경복궁(景福宮)을 세웠다. 

일설에는 KBS에서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을 이어 고려 사극을 계속 제작 방영하려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고 새 대통령이 “나는 존경하는 역사 인물이 이순신이다”라고 하여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전환하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제작 방영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미국 할리우드 유니버설스튜디오에 버금가는 세계 4대 촬영장 규모의 하나로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촬영지로 지방차지사에 남을 기념물이 되고 현대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촬영장이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현재의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은 KBS가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촬영을 위해 세운 세트장을 허물고 문경시가 공사비 75억 원을 투입하여 70,000㎡ 부지에 광화문, 경복궁, 동궁, 서운관, 궐내 각사, 양반집 등 103동을 건립하여 새로운 조선 시대 모습으로 2008년 4월 16일 준공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기존에 있던 초가집 22동과 기와집 5동을 합하여 130동의 세트 건물이 존재하고 있다.

문경에는 현재 고구려 신라 시대물 촬영 오픈세트장 1곳, 조선 시대물 촬영 오픈세트장 2곳이 있다. 2008년 그때 일부 뜻있는 시민들이 고려 시대물을 촬영할 수 있는 만월대 궁궐을 허물지 말고 보수 유지하여 그대로 두고 조선 시대 궁궐 세트장이 필요하다면 다른 곳에 건립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랬다면 우리나라에서 모든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다 갖춘 더 완벽한 국내 유일 촬영장 메카로 부상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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