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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대한민국 문화원상 대상 수상’ 그날을 되돌아보며

오재영 기자 입력 2022.12.19 11:10 수정 2022.12.19 11:46

이만유 전 문경문화원 이사

-대한민국 문화원상 대상 수상-채대진 원장(중앙)

-문경문화유적회 문화재 지킴이 활동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9년 10월 14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된 ‘2009 전국문화원의 날 기념식’에서 문경문화원이‘대한민국 문화원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날 기념식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한성 문경·예천지구 국회의원, 신현국 문경시장, 한국문화원연합회 최종수 회장을 비롯하여 전국 지방문화원장(227명) 등 문화원 가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정해 국악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그날은 문경시의 경사였고 창립한 지 반세기의 역사를 지닌 문경문화원의 영광이었다. ‘향토 전통문화로 지역발전에 이바지하는 문경문화원, 대한민국 문화원상 대상 수상’이란 제하의 언론 보도가 경향 각지에서 이 수상의 기쁨을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장사익 문화예술인의 축하 공연도 있었으며 재경 문경인 다수와 함께 필자도 시상식에 함께하였는데 문화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긍심 가득 그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국 227개 지방문화원 중에 문경문화원이‘문화원상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훌륭한 선배들이 닦아온 터전과 기반이 있었지만,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고 도전하며 인화를 주요 덕목으로 하는 훌륭한 리더십이 있는 리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큰 업적을 이룬 14~15대 문경문화원 채대진 원장이다. 아마 문경문화원 역사상 이때가 문경문화원 최고의 전성기였고 문화원 가족이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였으며 문화인다운 문화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대상 수상 공적 사항을 보면 회원 증가율 130.9%, 자체 회비 납부율 102%, 자체 적립금 4000만 원, 연 10만 원 이상 회비 납입자 233명, 총회비 수입금 연 3000만 원, 사무국 체계구축, 회원 참여 장려 프로그램 운영 등 자립 비율이 우수하고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문경시의 연 7억 이상 사업비 지원을 통해, 문경문화제, 경상감사 교인식 및 도임 행차 재현, 문경새재 과거길 달빛 사랑 여행 성공적 추진, 문경새재 명소화 프로젝트, 문경 2색 여행, 문경새재아리랑제, 호계별신굿 재현, 관례 재현, 전통 혼례, 견훤왕 및 운강 선생 향사 봉행, 독서문화상 공모, 경로효친 및 내 고장 문화유적사랑 실천 수기 공모, 학생 수상 작품집 발간, 문화유적반 교육, 풍물교육, 22개 반의 문화학교, 청소년 충효 교실, 새문경아카데미 운영, 향토 사료 발간 등 수많은 향토문화 보존과 새로운 문화를 창달하고 있음을 평가받았다.

문경문화원과 필자가 인연을 맺은 것은 33년의 공직생활을 끝낸 그 이듬해인 2004년 3월 어느 봄날 관광버스를 타고 충청 지방으로 문화탐방을 하러 가는 동행자로서 문경문화원 채대진 원장을 만나게 되었고 문화원 회원 가입을 권유받고 뜻한 바 있어 바로 문경문화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당시 문경시가 폐광 이후 침체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문화관광 웰빙의 고장 문경’이란 기치를 걸고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 문화관광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때에 이에 부응한 문화원의 바람직한 활동이 무엇인가를 고심하는 원장님의 뜻을 따르면서 의기투합하여 문화원 활동 영역을 넓히는 사업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게 되었다.

필자가 문화원 사업에 참여하고 보람을 느낀 첫 번째 사업이 문화관광 분야의 민간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2004년 10월 5일 ‘문경문화원 문화학교’에 ‘문화유적반’을 특별 신설하는 계획에 참여하여 49명의 교육생 대표로 활동한 것이다. 그해 연말에 수료식을 마친 뒤 이대로 헤어지면 교육받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배운 지식은 지역발전을 위해 활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문화재지킴이와 문화관광해설을 주목적으로 하는 모임을 발의하고 2005년 1월 11일 26명으로 구성된 ‘문경문화유적동호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2개월 과정의 교육만으로는 전문화가 미흡하다고 판단, 중급반 1년 과정을 건의, 진행하였다. 

그 후 필자를 비롯해 20여 명의 회원이 문화관광해설사, 자연생태해설사, 과학해설사 등으로 선발되어 활동하였고 회 명칭을 ‘문경문화유적회’로 변경하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문화원의 핵심 인적 자원을 지닌 문경문화원 소속 단체로 건재, 7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문화원 활동 중 필자의 두 번째 의미 있는 역점 사업은 구곡원림을 조사, 연구, 보존하기 위한 단체 결성을 발의하여 2013년 1월 15일 ‘문경구곡원림보존회’를 창립한 것이다.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조선 선비들의 이상향인 구곡의 보존 활동, 구곡 알리기를 위한 구곡사진전 개최, 언론방송에 기고 및 출연을 통한 홍보, 인문학 강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경상북도가 구곡원림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실시한 ‘백두대간 산림문화자산 탐방 교육’을 공동 추진하였고, 2014년 7월 야간 여행 상품으로 인기 있는 달빛사랑여행을 문경새재에서만 개최하던 것을 “선유구곡 달빛사랑여행”으로 변화를 추구해 보자는 의견을 제안하고 앞장서서 실행하였다. 

2014년에는 주자가 경영한 구곡원림 시원지인 중국 무이산 ‘무이구곡 탐방’을 기획 추진하였고, 2014년 12월 문경시민을 대상으로 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하는 ‘새문경 아카데미’시 식전 공연 대신 ‘사진으로 보는 문경의 구곡원림’이란 주제로 강의하였다. 그리고 구곡원림을 관광 자원화하고 교육장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유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의 구곡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1세기 신 구곡‘영강구곡원림’을 설정 경영하고 있다. 이 단체 역시 ‘문경문화유적회’와 같이 문경문화원 소속 단체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문경문화원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 외 문화원 활동으로 운영위원·이사·감사로 17년, 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과 자문위원으로 13년간 활동하였다. 그리고 계간지‘문경문화’ 편집위원 및 수십 번 기고, 문화유적반·충효교실·관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경향토사 강의하였으며 아리랑학교 추진 및 주관과 아리랑제 추진위원·아리랑 포럼 좌장·경창대회 심사·고유제 및 가사짓기대회 주관, 아리랑제 종합평가회를 개최하였다. 

‘경상감사 도임 행차와 교인식’ 재현 시 도사 등 역활 수회, 문화원 주관 ‘옛길컬처텔러 양성 교육’ 수강생 대표 및 텔러회 회장, 외부 인사가 문화원으로 의뢰한 문경의 문화와 역사 조사 및 탐방 시 안내 해설, 경복궁 등 문화원 문화 탐방 시 현장 해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추진한 문경새재과거길달빛사랑여행에 1회부터 114회까지 거의 전부 참여 및 해설을 하는 등 대소 문화원 추진 사업에 필자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은 곳이 없다시피 17년간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참여, 활동하였다.

이렇게 인연을 맺고 긴 세월을 함께한 문경문화원, 필자는 그동안 문화원 정체성 확립과 7만 문경 시민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21세기 시류에 부합하는 문화원다운 문화원으로 거듭나고 발전하기를 위한 고언(苦言)을 하다가 불합리와 구제 불능의 절벽에 부딪혀 “문경문화원이 제가 꿈꾸는 문화 활동을 하는 데 있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을 통감하며 문경문화원 회원을 탈퇴코자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2021년 11월 26일 회원 탈퇴서를 제출하였다. 장장 17여 년에 걸쳐 전력투구 나의 열정을 불태웠던 정든 문화원과 결별하고 이제는 문화 가족이 아니다.

지금 점촌 구도심 중앙에 100억여 원을 들여 건립한 문화원 건물이 크고 높지만, 빛나는 ‘대한민국 문화원상 대상’ 수상 이후 10여 년 시대 감각 부재와 비전이 없는 상황에서 제 역할은 물론 더 성장하지 못하고 침체되는 듯한 아쉬움에 그날을 되돌아보며 올해 새로 선임된 임원들에게 변화와 발전을 기대해 보지만 안타깝게도 어두움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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