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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작은 천사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5.15 14:48 수정 2017.05.15 14:48

찬란한 생명의 계절, 어느덧 온 세상이 뜨거운 황금빛을 띄고 있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말이다.눈부신 세상, 어둠 속에서 외로이 차가운 눈물을 흘리는 작은 천사가 있다. 눈물을 흘리는 작은 천사, 오늘 아동학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동학대란, 아동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거나,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의미한다.우리는 아동학대를 단순히 물리적인 폭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행위도 아동학대로 여겨지며,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받도록 하지 않고 아이를 방치하는 행위 또한 방임의 하나의 형태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동학대 전체 사례 가운데 80% 이상이 아이의 부모가 곧 가해자인 사례이다.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보호자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 아동학대의 가장 큰 특징은 ‘보호자가 곧 가해자인 점, 가해자가 곧 보호자인 점’이다.이러한 반인륜적인 특성으로 인해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고, 이로 인하여 전 사회적 차원의 선제적 개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이는 슬픔이라는 단어의 뜻을 채 알기도 전에 슬픔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덧붙여,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러한 것들을 가정 내부의 문제, 교육 차원의 문제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필자 또한 ‘저건 저 사람의 교육방식이야’라는 나태한 태도로 일관하며, 못 본 체한 적이 있다.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바로 내 눈앞에서 야단맞고 있는 저 아이, 저 가정이 사회의 보편적 규범의 한계점을 넘은 것은 아닌지. ‘한 가정의 가풍’이라는 특수성만을 내세우며 우리 사회의 보편성으로부터의 유형적, 무형적 면죄부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체벌이 엄한 가풍, 엄한 규율, 하나의 교육 방식으로 여겨지고, 반듯하게 자라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과거에 단순히 존재했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반드시 옳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그런 흐름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알고 옳다고 여겨왔던 소위 말하는 ‘상식’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현재 사회 전반적으로 아동학대의 문제점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다방면으로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하여 고심 중이며,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의 제정을 통해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경찰에서는 ‘학대예방 경찰관’제도를 도입하여, 해당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제고함에 있어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가장 필요하며, 그 작은 관심이 한 아이의 미래에 빛을 가득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그렇다. 우리 모두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우리 스스로를 반성해보는 계기와, 앞으로의 관심에 대한 약속 그리고 아동학대라는 문제의 조그마한 환기를 불러일으킨 기회가 되었길 바라며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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