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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근감소증 단순히 영양과 운동만으로 해결될까?'

황보문옥 기자 입력 2023.03.15 15:41 수정 2023.03.15 15:57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한국건강관리협회 제공

노인은 전반적으로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문제가 생기더라도 노화라는 큰 범위 내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노인의 근감소증 역시 노화라는 요소를 고려한 치료방법만이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대 의학은 인류가 19세기 말 미생물을 발견하며 우리 몸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약으로 치료하는 개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배가 아프면 배 아픈 약, 혈압이 높으면 혈압 떨어뜨리는 약, 이런 식으로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 현상에 대한 치료를 위해 약을 적용하는 것이다. 

신약 개발도 이런 개념으로 이뤄진다. 노화에 따라 인지기능이 나빠지는 현상에 대해 알츠하이머의 원인 병소 발생을 예방하거나, 병리적인 변화를 해소할 수 있는 치매약을 개발하는 식이다. 하지만, 감염병이나 몇몇 암, 유전성 질환과는 달리 노화의 결과로 벌어지는 기능 이상에는 이런 접근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노화로 근육의 기능과 양이 감소하는 근감소증과 근본 원인이 되는 노쇠다. 근육의 기능과 양은 다음 세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며, 우리 몸속에서는 근육 단백질이 생성되고 분해되는 미세한 사이클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첫째는 근육이 얼마만큼의 물리적 자극을 받는지의 여부이다. 이러한 물리적 자극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근력 운동이다. 
둘째, 내 몸이 쓰는 것보다 충분한 영양성분이 몸속으로 들어오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근육 세포는 아미노산과 탄수화물을 포함한 개별 영양성분의 농도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전반적인 영양상태를 모두 고려해서 근육단백질을 합성할지, 또는 근육단백질을 녹여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셋째는 의학적, 생물학적으로 근육단백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의 균형이다. 진화적으로 우리 몸은 위기에 처하면, 즉 감염이 생기거나(염증)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스트레스 호르몬) 하면 근육은 우리 몸을 일단 살리는 데에 집중하기 위해, 근육을 합성하는 일을 멈추고 오히려 근육단백질을 녹여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해버리게 된다.

이 세 가지 요인을 기반으로 과학자들이 근육 생성 연구를 할 때 주로 별다른 질병이 없으면서 근감소 현상 자체만 존재하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을 모아서, 운동을 격려하고 영양을 공급해 근육의 양과 기능이 증가되는 것을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이 연구 결과들을 모아 “근감소증의 치료는 운동과 영양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참 많지만, 이는 의사들이 만나게 되는 근감소증이 동반된 어르신들에게서 관찰되는 노화와 기능의 변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근감소증과 노쇠의 중재에 있어서 핵심축이며, 건강한 생활 습관의 요소이기도 한 운동과 영양은 물론 아주 중요하다. 사실 임상 연구를 해보면 이 두 요소가 근감소증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 수단이 되는 것은 맞다. 

신체 활동이나 식사 중 단 한 가지만이라도 왜곡되거나, 심지어 운동을 꾸준히 하더라도 운동 습관 내에서의 균형이 틀어지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에 광범위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앓고 있는 질병과 근감소증 정도에 꼭 맞도록 제대로 설계된 근력 강화 운동을 2개월 정도 꾸준히 하면 우울, 불안, 수면장애, 요실금, 변비, 소화불량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근육량, 근력, 신체 기능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매우 다양한 임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단순히 근감소증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에 대한 해답은 그저 운동과 영양이라고 뭉뚱그리는 것은 숨겨진 폐암 때문에 기침하는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기침약만 처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기저 원인 때문에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고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공허하게 공자님 말씀을 외치는 격이 되기도 한다.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기력이 많이 떨어진 어르신들은 겉보기에는 ‘근감소증’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에서 얽히고설킨 원인들이 있다. 코로나19를 앓은 이후 심해진 우울감과 식욕 저하 때문에 식사량과 바깥 활동이 줄면서 우울, 불안, 수면, 인지가 모두 악화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을 더 하세요”, “단백질을 드세요”라고 한들 몸과 마음이 주고받는 악순환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울, 수면을 비롯해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치료 노력이 동반되면, 식사와 활동은 저절로 좋아지면서 삶의 질이 회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감소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진료실을 찾으신 어르신에게서 암, 내분비계 질환, 자가면역 질환, 치매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근감소증이라는 현상은 이런 복합적인 현상이 더해져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먹고 있는 약들이 의식을 처지게 만들거나 식욕을 떨어뜨리는 숨겨진 원인이었음을 확인할 때도 있다.

당뇨병이 있어서 근육을 만드는 몸의 능력도 애초에 떨어져 있는데, 우울감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이 겹치고,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식욕을 떨어뜨리는 약까지 먹어야 하는 이 요인들이 모두 더해진 결과가 근육이 빠지는 모멘텀을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여러 요인이 더해져서 한 가지 현상을 만드는 노인의학적 문제들을 ‘노인증후군’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근육 빠지는 현상이 100만큼 벌어지고 있을 때, 식욕 떨어지는 약 때문에 밥 못 먹는 것이 30만큼, 당뇨병이 20만큼, 몇 달 전에 걸렸던 코로나19가 20만큼, 우울감과 인지 저하에 따른 활동 저하가 또 30만큼을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여분을 정확하게 숫자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노인의학 진료실에서는 찾아낼 수 있는 기여 요인들을 최대한 찾아내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인증후군들의 진단과 치료 과정은 ‘노인포괄평가’라고 불리는, 삶을 지탱하는 모든 의학적, 기능적 요인들을 자세히 뜯어보고 문제들이 만들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들을 끊어주는 과정이 핵심이고, 이런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노인의학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노화와 질병을 설명할 때는 자동차만큼 좋은 비유도 찾기 어렵다. 자동차를 오랜 기간 운행하면 여러 부품이 노화되고 이런 이상들이 종국에는 소음 진동을 만들어 승차감을 악화시키고 작동 효율성을 저하시켜 차가 잘 나가지 않게 된다. 

이런 문제로 정비사를 찾았을 때, 훌륭한 정비사는 불거져 나온 결과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되는 부속부터 교체한다. 이보다 못한 정비사는 불거져 나온 결과들과 관련 있는 부속들을 변죽을 울리듯 교체하기도 한다. 차가 잘 나가지 않는데 가속 페달을 덜 밟아서 그렇다고 설명하는 어리석은 정비사는 상상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의사가 이렇게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고 원인을 추론해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여러 요소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있는 클래식카를 보유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차량에 생긴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전반적인 문제에서부터 세부적인 원인까지 살펴볼 수 있는 정비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적어도 노년기 환자를 대상으로는 ‘엔진 정비소’, ‘배기관 정비소’, ‘타이어 정비소’, ‘서스펜션 정비소’만 있는 상태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서 볼 수 있는 질병이 얽히고설킨 결과로 나타나는 근감소증과 노쇠의 원인을 찾아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나기가 어렵다.

힘이 없고 어지러우면 ‘어지러운 데 좋은 약’을 받는다. ‘어지러운 데 좋은 약’ 중 흔히 사용되는, 소위 항콜린 약물(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신호를 저해하는 특성이 있는 약물)은 변비나 낙상의 위험성을 높이니 영양상태를 더 나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또 소화가 안되면 ‘소화제’를 받는다. 소화제 중에도 항콜린 약물들이 더러 있다. 

이런 항콜린 약물들이 하나둘 늘어나다 보면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마치 치매가 생긴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 또 치매 보는 의사를 찾아가 인지기능 검사를 하고 치매약을 받는다. 치매약은 지금까지 받았던 항콜린 약물과는 정반대로, 아세틸콜린의 신호를 증가시키는 약이다. 흔히 생기는 부작용으로 방광에 소변이 조금만 차도 소변을 보고 싶은 절박감이 드는 현상, 위장의 불편함이 평소보다 훨씬 심하게 느껴지는 현상 등이 있다. 

이런 불편감은 식사나 수분 섭취를 더 악화시킨다. 결과적으로, 각 증상들을 돌보는 의사 여럿을 만나 수많은 약을 받았음에도 전체적인 컨디션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한다.

노인의학에서는 약의 부작용이 또 다른 약을 끊임없이 부르는 이러한 현상을 처방연쇄(prescribing cascade)라고 한다. 환자의 모든 약을 관리하고 노인의학적 질병 특성을 고려해 진료할 수 있는 1차적인 책임자가 있다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근감소증은 따로 떨어진 질병이 아니라, 잘못 방치하면 숨겨진 큰 질병을 놓치게 만들거나 돌이킬 수 없는 기능 쇠퇴를 만들어 가족이나 요양보호사에 의존한 여생을 살게 되는 중요한 전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 치료 과정은 의사의 노인의학적 사고방식이 핵심이 된다. 다가올 미래의 어르신 돌봄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포괄적인 노인의학 진료가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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