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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호국영웅 고 황병준 하사,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황보문옥 기자 입력 2023.08.26 21:55 수정 2023.08.27 13:43

’10년, ’17년 두 차례 영덕 일대서 발굴된 유해, 친조카 유전자 채취 신원 확인
약혼녀 남겨두고 국군 제3사단 소속으로 참전, 1950년 8월 ‘영덕 전투’서 전사

↑↑ 호국의_영웅_귀환행사<경북도 제공>

6·25전쟁 당시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국군 전사자가,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2010년, 2017년 영덕군 우곡리 일대에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3사단 소속 고(故) 황병준 하사로 확인했다.

이번 신원확인은 전사자의 병적자료 등을 바탕으로 유가족을 찾아가는 기동탐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국유단 기동탐문관은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를 의성으로 확인한 후 의성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고인의 조카로 추정되는 황태기씨(72세)를 지난 2022년 10월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이에 따라 채취한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정밀 분석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이로써 고인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유해발굴을 개시한 이후 215번 째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다.

고인의 유해는 고인의 희생과 헌신의 흔적을 끈기 있게 추적해 온 후배 장병들에 의해 수습됐다.
지난 2010년 3월경 국유단과 해병 1사단 장병 100여 명이 6·25전쟁 당시 개인호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가로로 줄지어 늘어선 뒤 경사면을 따라 발굴을 하던 중 머리뼈, 위팔뼈 등을 수습했으며, 이후 2017년 3월, 1차 발굴지점 기준 약 10m 떨어진 곳에서 아래턱뼈를 수습했다.

고(故) 황병준 하사는 국군 제3사단 소속으로,경북 영덕 전투(1950. 7. 19. ~ 8. 17.)에 참전 중 전사했다.

고인은 1929년 9월, 의성 신평면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인은 큰형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되자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도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집안을 챙기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또한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입대 직전에 약혼을 한 후 약혼녀에게 ‘꼭 살아 돌아올 테니 결혼해 아들딸 낳고 잘살자’라고 약조하며 눈물로 이별을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1950년 5월, 부산에 있는 제3사단 23연대에 입대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울진으로 이동해 1950년 7월경 울진-영해 전투에 참전해 북한군 남하를 저지한 이후 1950년 7월 19일~8월 17일까지 영덕 전투에 참전 중 안타깝게도 1950년 8월 14일, 20세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영덕 전투는 동해안의 영덕 일대에서 국군 제3사단이 부산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제5사단을 저지하고 반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전투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지난 24일 대구 동구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에서 열렸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6·25전쟁으로 당시 산야에 묻혀 계셨던 ‘전사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행사’다.

행사는 유가족 대표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한 설명을 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에 조카 황태기 씨(72)는 “7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라도 늦었지만 삼촌의 유해를 찾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삼촌과 같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끝까지 찾아 예우해주는 국가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많은 유해를 찾아 가족으로 품으로 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하며, 제공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 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황보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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