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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리(倫理)에 답(答)하는 자(者)가 없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8.22 10:28 수정 2017.08.22 10:28

인간(人間)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마음 상태가 달라지고 마음은 보고자 하는 대상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작금의 일상에서 다가오는 매체들은 누드 영상으로 스마트폰 액정화면에 뜨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또한 폭력적인 영상물과 음란한 영상물과 함께 바이러스들처럼 스마트폰 속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쉼 없이 달려드는 음란미디어를 한두 번 받아 본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마음 상태가 달라진다고 할 때 미디어의 각종 영상물들에 노출된 이 시대에 청소년들이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성인들이라고 해서 음란영상물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심지어 미디어를 동원하여 온 세계의 사람들을 미디어 섹스 가상현실의 섹스도 유도하려는 거대한 음모가 시대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관계구성으로 이유를 내세우며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세계적인 사이버문화 이론가로 유명한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자신의 저서 미디어 바이러스(Media Virus Hidden Agendas in Popular Culture)에서 그러한 현상을 분석하여 메타미디어 행동주의자인 시리우스의 말을 하고 있다. 미디어시대라 일컬어지는 요즘은 각종 영상물이 스마트폰으로 우리들의 시각을 맹렬히 자극한다. TV매체마저 현란한 몸짓의 홈쇼핑 광고는 우리의 눈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하다. 스마트폰 유튜브는 순식간에 지구 이쪽에서 저쪽 끝으로 이동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유튜브를 통하여 실시간 쏟아지는 미디어들은 그야말로 태평양 같은 넓은 바다를 이루고도 남을 정도다. 물론 스마트폰 유튜브는 유익한 정보가 대부분이지만 쓰레기 같은 미디어들로 더러워지다보니 ‘유-쓰레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디어는 우리를 서로 엮는 것은 그냥 이야기 하고 상냥하게 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인간의 경험상 필요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으려고 우리는 사디스트-마조히스트문화의 변화시대에 머물고 있는지 모른다.현인은 죽는 그날까지 자신을 길들이는 사람이다. 남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길들여서 남에게 맞추는 것이 모든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이다 고 본다. 남과 세상은 나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길들여서 남에게 맞추고 나를 세상에 적응시켜야 시대의 갈등이 해결된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서는 필자는 미디어세상의 미래변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시대변화에 대한 사실도 안다. 이웃사회의 미래변화가 이 땅의 사람들이 변화고 또한 이 나라의 미래변화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것도 안다.미래시대를 걱정하며 진보와 개혁을 외치는 세력들이 미래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거리로 나서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들은 휴먼스페이스 세상에 개혁도 진보도 변화도 전혀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저 입만 가지고 미래시대 개혁이니 진보니 변화니 하고 떠들고 있으니 자신들의 마음은 시대적 개혁되고 변화되어야 함을 모르는 것 같다. 날마다 언론의 사회면은 갑의 추태 성추행 성폭행에 을의 하늘은 울고 있다.누구하나 도덕(道德)을 논(論)하는 자(者) 없고 윤리(倫理)에 답(答)하는 자(者)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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