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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목불인견'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다

김경태 기자 입력 2024.06.22 21:16 수정 2024.06.23 10:36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는 말은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없다는 뜻이다. 그 상황이 너무 비참하거나 부도덕하여 눈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보고 있을 수가 없다는 의미다. 명나라 주국정의 용담소품의 단대기에 보면 "데려가서 지옥을 보게 하니 광경이 참혹하여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어 서둘러 달아 났다(又導觀諸獄 景象甚慘 目不忍視 狼현而走)"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문인 이지후는 그의 저서 동국사질에 목불인견이란 말을 사용하여 당 시대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균형을 비판했다. 눈을 뜨고는 참아 바라 볼 수 없을 정도의 비참상이나 죄악상을 두고 말할 때 이 표현을 사용했다. 

암행어사 이몽룡은 남원 사또의 극심한 부도덕에 대해 "금 술독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드 높더라(金樽味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고 시를 지어 먼저 탐관오리의 양심을 심판하고 어사 출도를 발령하여 양민을 학대한 죄인을 통쾌하게 응징했다.

남원 고을에 나타났던 암행어사가 지금 세상에 다시 온다면 어떻게 될가. 그 당시 보다 더 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의 그늘에 민초의 눈물과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보고 놀랄 것이다. 참으로 눈 뜨고는 참고 볼 수없는 현실을 보고 목불인견이라 하고 목불정시 또는 참불인견이라고 탄식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부정과 죄악을 자행한 괴수들의 양심과 지성을 때리기 위해 검과 같은 칼럼으로 목을 갈길 것이다.

"동량은 안 주고 쪽밥만 깬다(雖不給糧 毋破我瓢)"는 말이 있다. 권력이나 재산을 가진자가 불쌍한 약자를 대하여 긍휼한 마음은 없고 천대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비꼬는 말이다. 맹자는 인간에게는 동물과 다른 4단(四端)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 하는 마음, 겸손해 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이 있으며 이상의 마음 가운데 약자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이 인간성의 첫번째라고 했다.

사람을 업씬 여기고 짓밟고 죽이는 일을 들어 내놓고 하는 권력자는 그래도 뉘우칠 줄도 알고, 양심의 고통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미소 지으며 자비로 위장한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이 힘없는 사람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검찰에 불려가는 인사들이 기자들 앞에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을 볼라치면 그 얼굴 표정이나 하는 말을 보아서는 선악과 시비를 판단하기 어렵다. 검찰이 자신의 혐의를 증거물을 찾아내 증명해 줄 때까지는 너무도 당당하다.

식민지 국가에서 억울하게 잡혀가는 독립 투사처럼 의기 양양하니 도무지 평범한 시민은 헷갈릴 수 밖에 없다. 3심을 거처 판결을 받고 감옥 살이를 하고 나오면서도 민주투사가 억울한 고난을 겪고 훈장을 달고 나오듯 출소를 하는 것도 목불인견이고, 그 기회를 놓칠세라 생두부 대신 꽃다발을 들고 몰려드는 것도 목불인견이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사태가 자꾸 늘어나면 어찌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눈을 감고 다닐 수도 없고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짓을 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날리고 시원하게 빰을 때려야 한다.

신출 홍길동이나 각시탈이 나타나 신출 귀몰하게 응징해 혼줄을 내주는 길 밖에 없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신길동이 온 오프라인을 초월해 찾아갈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 멀티 뉴미디어 통신 기술력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도술로 몽둥이로 패고 송곳으로 찌를 것이다. 그래서 눈을 감지 않고 바로 뜨고 세상을 보고 살 수 있게 하자는 데 박수치고 협력할 사람 양심이 싱싱한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목불인견 이란 말은 은퇴 하고 악불인견 악을 보고 참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으로 바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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