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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바람 불어 더, 그리움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9.23 06:49 수정 2024.09.23 06:55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엄마 아빠가 이승을 등지자, 시골 집만 덩그렇게 남았다. 10여 년 전에 영양 시내로 집을 사서, 이리로 왔다. 새로 기와도 올렸다. 화단엔 집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릅나무가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독대, 처마 밑으로 예쁘게 단장한 갈색 발코니엔 아직도 두 분이 나란히 앉아 계시던, 원목 의자가 외롭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빠는 몸이 불편해, 병원에 늘 계시면서, 비워둔 집 걱정이 많았다. 집이 험해지면, 동네 사람들 보기에도 체면이 안 선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들의 눈엔 대문 활짝 열어 둬도, 뭐 하나 잃을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아빠는 집안에 ‘홀로 있을 물건’들이 하나같이 소중하게 여겼다. 모두가 당신의 손때가 묻은 것이기에 그런가보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아빠에겐 자신의 손때가 바로 쓸모였는가 보다. 언젠가 훌훌 털고, 일어나 돌아갈 집이 아빠가 떠나올 때와 변함없이 당신을 맞아주길 바라고 바랐던 것 같다.

주인을 잃은 집에, 우리 다섯 남매가 ‘순번을 정해’, 아빠가 애지중지(愛之重之) 여기던 집으로 간다. 가서 하루 머무른다. 무심히 마당에 올라오는 풀을 뽑는다. 화단에 거침없이 자라는 넝쿨들도 걷어낸다. 꼭꼭 닫아 둔 창문과 방문을 열어, 불어오는 가을바람으로 가득 차게 한다. 물새는 곳은 없는지, 두루 살핀다. 장롱 속 이불도 다시 빤다. 바람햇살에 말려서, 새로 개켜, 차곡차곡 챙겨 제자리에 넣는다.

이런 것은 구석구석 보물찾기 같으나, 나에겐 생전의 부모님 '사모곡 창고'다. 부모님의 흔적들이다. 아직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부모님의 '기억 창고'인, 시골집의 부모님 만나러 가듯, 설레며 달려간다. 우릴 키우실 땐 많은 힘이 들었으나, 살아가며 2남 3녀, 5남매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은 왠지 마음 바람이 세차다. '한씨외전(韓氏外傳)'에 따르면,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란 말이 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효(孝)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 “바람 불어 더, 그리움”이 가슴에 구멍을 뚫는다.

아무도 맞이 해주는 이가 없는 시골집이지만 바람이 마중한다.

다섯 남매가 부모님 고향집 돌보기 순번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벌칙도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 적도 있으나, 둘이서, 때론 셋이서, 때론 다섯이, 모두 모여 어릴 적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내가 가까이서 자주 만나지 못했던 50대 60대의 엄마 아빠를, 동생들의 이야기로 만난다.

형은 형대로 아우는 아우대로 섭섭했던 시간들도 이야기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웃는다. 의도치 않게 서로를 섭섭하게 만들고 오해한 일, 요즘 사는 이야기,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로 밤샘 이야기에 날이 새는 줄을 모른다. 세 살, 두 살 터울로 5남매! 첫째와 다섯째가 열 살 차이가 난다. 5남매가 엄마 아빠를 만난, 시차(時差)에 차이가 많이 난다. 일찍 고향을 떠나 온 언니와 나는 동생들과 함께 집에 머물었던 시간이 짧다. 우리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언니와 난 부모님 곁을 떠나 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형제들 마다 다르다. 이해하는 부분도 다르다. 세월이 약이란 말처럼, 이제 엄마 아빠의 힘겨운 시간을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8남매 맏이인 아빠와, 6남매 맏이인 엄마가 결혼했다. 7년 만에 만난 첫딸 언니는 발을 땅에 내려놓을 새도 없었다고, 이모들은 말한다. 모습도 성격도 아빠를 가장 많이 닮은 첫째 언니, 엄마 아빠를 반반씩 닮은 둘째인 나, 모습은 외탁인데 성격은 친탁인 셋째 남동생, 엄마의 외모와 여성스러움을 가장 많이 닮은 넷째 여동생, 모습은 외탁에다 성격은 친탁인 막내 남동생, 어디 하나 똑 닮은 곳 없이 각양각색이라 신기하다. 일곱 가족 중에 이젠 5남매만 남았다.

어느 주말 순번 돌아온 딸과, 아들이 마당 훤하게 불 밝히고, 기다려 주시던 그때를 추억한다. 현관문 활짝 열어, 환하게 웃던 얼굴을 기억한다. 꼭꼭 걸어 잠근 대문을 열고, 집안 가득 온기를 넣으러, 달려간다. 집안 구석구석 아직도 남아 있는 엄마 아빠의 체취 속에서 위로 받으러 달려간다.

오늘따라 부는 바람에 그리움이 젖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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