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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넓어진 공간에서 창조적 파괴를 꿈꾸며 

황보문옥 기자 입력 2024.10.15 09:32 수정 2024.10.15 09:45

전 김천시 부시장 이창재

이창재 전 김천시 부시장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고 돌아와 장바구니를 정리하던 중 버려야 할 과일 포장용 플라스틱 때문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키위 포장지가 그랬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순간,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쳤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미니멀리즘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람들은 불필요한 소유를 경계하게 되었다. 과도한 소유에 대한 집착이 결국 재앙을 키운 셈이었다. 지진으로 넘어진 냉장고나 장롱 같은 거대한 가구들이, 오히려 자연 재해보다 더 큰 인명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많이 소유하고 크고 화려한 것이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그 욕망이 때로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레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젊을 때는 무엇이든 더 많이, 더 크게 소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욕심을 덜어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 생각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증산면에서 소문난 목수로 평범하게 사셨고 평소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셨다. 아버지는 돈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으셨다. 수입이라고는 6.25 참전용사 수당과 자식들이 드리는 약간의 용돈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사셨다. 돌아가셨을때 유품을 정리하던 중 특별한건 평소 소중히 간직하고 계시던 6.25 참전용사 훈장이 전부였다.

사람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공간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없애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가끔 청소를 마친 후 방 안을 둘러보면, 넓어진 공간에서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안 쓰는 물건을 버릴 때,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공간도 함께 정리되는 것 같다.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은 곧 내면을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넓어진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넓어진 공간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주변의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냈을 때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지금까지 굳어진 틀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움트는 것처럼. 

정리하고 비워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새롭게 꿈꿀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창조적 파괴를 위해, 덜어내고 비우는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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