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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카이로스의 시간' 천년을 살 수 있다

김경태 기자 입력 2024.10.21 08:25 수정 2024.10.21 08:31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가 병들어 죽는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유한한 생명에 대한 절망과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평생을 통해 소모하는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그 중에 카이로스 시간을 살면 죽음을 초월해 영원히 살 수 있다. 시간에는 흘러가는 시간과 의미있는 시간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은 헬라어로 크로노스(chronos)라 하고 의미 있는 시간은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의 신 중에 하나며 일반적 시간을 의미한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을 의미하며 천문학적으로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며 지구가 자전 공전하면서 결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생물학적으로 동식물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노병사의 시간을 말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신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으로 불리었다.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을 말하며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을 말한다. 즉 특정한 시간을 말하며 흘러가는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이를 카이로스 시간이라고 부른다. 같은 24시간을 보낸다 하드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고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느낌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관리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역사에는 조사와 탐구에 의한 순수한 역사가 있고 해석이나 뜻으로 본 풀이의 역사가 있다. 순수 역사는 독일어로 히스토리에(historie)라 하고 풀이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보면 과거에 속한다. 흘러간 시간속에 발생한 일들은 한 곳에 모우면 역사가 된다. 개인적인 역사를 모우면 전기가 되고 체험을 모아 적으면 간증집이 된다. 이때 전기는 히스토리에이며 간증집은 게쉬크테이다. 역사가 비록 과거에 속하지만 그역사를 풀이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과거의 역사가 오늘의 역사가 되고 살아있는 역사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의 역사인 히스토리 보다 풀이의 역사인 게쉬크테에 더 관심을 갖는다.

시간이 현상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시간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지는 마치 닭과 계란 어느 것이 먼저인지 가리기 어려운 것과 같다. 영원도 변화가 없고 시간이 멈춘 상태인지 원래 부터 있었는지 결론 내리기 어렵다. 변화하는 시간 속에 살면서 생노병사의 과정을 밟고 있는 인간은 시간의 두가지 의미를 잘 구분해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의존해 살고 커서는 일과 사람의 관계에 이끌려 살다가 노년에 이러러서야 자신을 돌아보면서 존재론적인 물음을 갖게 된다. 인생이 너무도 짧고 허무하다는 자각에 자신을 고독과 절망에 빠지게 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의미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1년을 살아도 100년을 산 것과 맞먹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도전해 볼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순교의 길을 간 의인, 순국의 길을 간 애국자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 안중근 의사의 할빈역 구국 거사, 백선엽 장군의 다부동 호국전투는 카이로스 시간이며 게쉬테크 역사다. 극단적 선택을 해야할 때도 있겠지만 매일 의미있는 시간을 사는 것도 중요하다. 씨줄과 같은 크로노스의 시간에 자신을 방치하지 말고 날줄과 같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하루를 산 것이 천년을 산 것과 같은 삶을 찾아 살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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