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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내 고향 중신기(中新期)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9.22 13:10 수정 2017.09.22 13:10

내가 태어난 것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1942년 11월 14일 당시 문경군 호서 남면 모전리 5번지(모전 2리/속명 중신기)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꼭 6개월 뒤였다. 젊은 남편인 아버지(김덕출)가 26세로 요절했는데 남은 가족은 할아버지·할머니, 청상이 된 어머니와 딸 둘(자매)과 남동생을 남기고 떠났다.아내의 뱃속에 아기(나)를 회태한 것도 아버지는 몰랐다.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절망 속에 헤매던 우리 가정에, 유복자로 태어난 나의 출생은 단순한 출생이 아니라, 가정에 다시 태양이 떠오르는 탄생이요, 가족들에게 믿음직한 희망이 되어, 우리 집식구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동네 사람들도 여섯 달 전에 죽은 덕출이가 다시 살아났다고 찬탄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에게 고향은 태어날 때부터 축복의 땅이 될 수 없었다. 뱃속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학채(學債)를 갚느라고, 살던 오두막마저 날려 보내, 곁방살이로 전락하여, 8년이란 긴 세월을 남의 곁방을 순례하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냈다. 내가 태어난 중신기는 점촌(店村) 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 마을로, 점촌에 살러 오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간이역 마을이었다. 중신기는 이웃 동네인 양지마와는 달리 부자가 없는 빈동(貧洞)이었다. 가구(家口)가 백집이 넘었지만, 자기 논 열 마지기(십두락)가 되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을 겨우 꼽을 정도였다. 곡식은 턱없이 부족한 가난한 마을이었지만, 말은 풍년이든 마을이다. 비알 밭매기(말 비꼬기)가 중신기 동네 어른들의 장기였다. 키 큰 사람을 ‘키다리’라 단순하게 표현하지 않고, 키 큰 사람을 ‘군불 작대기’라고 불렀다. 땔감을 부엌 아궁이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하기 때문에 ‘군불 작대기’는 보통 부지깽이보다는 훨씬 길었다. 박오출(가명)씨는 사람이 야무지지 못하고, 거죽었는데 별명이 송장메뚜기였다. 선친 또래의 아저씨들이 이야기를 하는데도, 비꼬기·역설(逆說)이 판을 쳐서, 아이들은 들어도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린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어른들의 토속적이고 재밌는 대화를 듣고 자라, 토속어에 빠삭하고, 비꼬기 화법에도 숙달이 되어, 25세 젊은 나이에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풍자시(참여시)로 전국 시단에 군림하게 됐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내 고향 중신기는 말만 풍년이든 동네가 아니라, 가락(리듬)에도 딴 동네보다 빼어났다. 음력 정초에 걸립놀이(농악)가 벌어져, 꼬맹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걸립패(농악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중신기는 문경군 농악대회에서 해마다 1등을 놓치지 않아, 농악대는 마을의 자랑이자 문경군의 자랑이었다. 해방 직후 차가 귀할 때라 당시 문경군에 차라곤 두드려 만든 트럭이 겨우 두 대가 있었다. 그중에 트럭 한 대를 중신기 농악대가 대절 하여, 안동에서 열리는 농악대회에 출연하여, 해마다 2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어려서 듣던 꽹과리·북·장고의 리듬이 내 핏속에 흘러들었고, 어른들의 능수능란하던 농담이, 내가 자라나자 무궁무진한 익살로 재현되고, 농악대의 가락이 몸속에 스며들어, 시의 가락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뽑아내게 되었다. 고향은 내게 아픔만 준 게 아니라, 위대한 예술(시)을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지급도 매일 고향마을을 찾는다. 고향 중신기는 내가 지금 사는 상신기와의 거리가 1km도 되지 않는다.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은 사람(가족·이웃)이요, 자연환경은 인적(人的)환경에 다음가는 2차적 환경이다. 옛날 중신기에 살던 사람은 지금은 한두 명밖에 없다. 내 고향 중신기는 위대하다. 대통령과 재벌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풍자시(참여시) 창작의 태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사람은 고향이 없다. 자연환경으로서 고향보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1차적 고향이다. 나이가 젊든 많든 마음의 고향을 잃지 않고, 고이 지니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노등남 약사님(대구 약국 경영)은 중신기 터줏대감으로 건재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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