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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세계와 통한 김치, 세계로 통할 김치

안진우 기자 입력 2018.03.15 18:32 수정 2018.03.15 18:32

1988년 하계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린 지 30년 만에 동계올림픽이 강원 평창과 강릉 일대에서 펼쳐졌다. 30년 전,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에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일궈낸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놓인 청년과 같았다. 윗세대로부터 받은 자산도 평판도 없으니 눈에 드러나 보이는 성적으로 스스로를 입증해내야 했다. 세계 무대에 나가면 무조건 1등이어야 했으며, 우리가 얼마나 우수한지 우격다짐으로라도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을 대하는 우리 국민의 자세는, 인정과 평판이 자랑해서 억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타인의 공감을 얻음으로써 입증되는 것임을 깨달은 성숙한 중년과도 같았다. 성적보다 참여한 이들과의 교감과 소통·화합을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이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문화행사가 올림픽 기간 중 빙상경기 개최지인 강릉의 한 문화공간에서 열렸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에서 주최한 이 행사는 올림픽을 계기로 각국에서 온 선수단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김치가 한국만의 배타적 음식문화가 아닌, 전세계와 교류를 통해 완성된 어울림의 음식문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지금까지 대다수 김치홍보가 김치의 우수성과 한국이 김치 종주국임을 주입시키기에 급급했던 데 비해 이번 행사는 ‘김치, 세계와 통(通)하다’라는 주제로 소통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초점을 둠으로써 ‘세계인이 함께 모여 소통하는 올림픽 정신과 잘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김치는 주재료인 고추·생강·마늘·배추 등을 세계 각지로부터 받아들여서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주·사업·학업 등 다양한 사연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지 환경에 적응하면서 때로는 선인장 김치로, 비트 김치로, 또 양배추 김치로 소통을 거듭해왔다. 이렇게 세계와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완성된 김치문화야말로 진정한 ‘창의적 소통의 산물’이다.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있어 아직도 자국문화 중심주의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김치의 세계화는 세계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음식문화로서의 보편성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한국 사람이 한국산 재료로 만든 것만이 김치고 한국인이 김치의 주인이라는 배타적, 일방적인 접근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우리 음식문화를 정리하고 소통하는 차원 높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문화적 보편성을 확보하고 유무형의 경제적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김치 세계화의 해결책이 아닐까.

▲ 박 채 린 책임연구원 /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융합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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