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기고

개똥이…꽃님… 이름 두고 남들이 뭐라는게 중요한가

안진우 기자 입력 2018.04.02 19:06 수정 2018.04.02 19:06

이름, 보다 포괄적으로는 이름을 짓는 방식은 평소 잘 의식하지 못할 뿐 문화의 큰 뼈대를 이룬다. 한 나라 혹은 문화권의 관습과 제도 법률, 심지어는 사고 방식까지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공기의 존재를 못 느끼며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데, 오늘날 국경을 초월해 이름 없이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성명이 성씨와 출생 후 붙여지는 이름,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건 문화권을 넘어 공통적이다. 물론 성만 있거나, 혹은 출생과 함께 생겨난 이름 하나만 사용하는 예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런 경우는 사실상 찾아보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외국 성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성씨와 주어지는 이름의 위치가 반대라는 점이다. 미국에 이민한 교포 2세 혹은 3세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한국식 이름은 김철수인데, 미국 이름으로는 데이비드 김, 이런 식이다. 성이 앞이 아니라, 뒤쪽에 자리하는 건 아시아를 제외한 국가에서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특히 영어가 공식 언어인 나라에서는 거의 예외가 없으며 대다수 유럽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성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흔하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 순서로 성명을 쓰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중국이 인구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류의 상당수가 성씨를 앞세우는 성명 표기 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은 성명에서 성이 앞자리에 오는 건 공통적이지만, 일본은 여자가 혼인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게 보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일본 수상 아베 신조의 부인은 아베 아키에인 식이다.  성명 기준으로 대별하면, 인류는 성을 앞에 두는 문화권과 뒤에 두는 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명백하게 밝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성과 명의 위치가 서로 다르게 된 연유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들은 다수 존재한다.  성을 앞 세우는 문화권의 경우 성씨의 종류가 이름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20세기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성씨를 제외하면, 본관을 구분하지 않을 때 대략 300개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김, 이, 박, 최, 정’ 5개 성씨가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명, 즉 주어지는 이름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성씨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운 건 분명하다.
 한국인들의 작명 방식은 고대 중국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역시 한국처럼 출생 후 붙여지는 이름보다 성씨의 개수가 압도적으로 적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 전체 인구의 85% 안팎이 100개 이하의 성씨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왕씨, 장씨, 이씨는 중국의 ‘3대 성씨’로 각각 수천만 명 선이어서,  웬만한 나라 인구를 능가한다. 과거 유행했던 노랫말 가운데 우스개 표현으로 “비단 장사 왕서방”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왕씨가 중국을 대표하는 성씨라는 점을 은연 중 깔고 있는 예이기도 하다.  동북아 3국과는 달리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는 상대적으로 성씨가 다양한 편이다. 미국의 경우 다민족 국가인 탓이 크겠지만, 성의 숫자가 무려 2000개에 육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반면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인구에 비해 출생 후 얻는 이름들이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사람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중시하는 걸 앞쪽에 두는 성향이라고 한다면,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은 성에, 구미 국가들은 이름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한국인이나 중국인 등은 집안이나 종중 등으로 대표되는 씨족을 상대적으로 서구인보다 중요하게 여겼다고 미뤄 짐작할 수도 있다. 성씨 중심 사회라는 점은 직업이나 지위 등의 호칭이 뒤에 달라 붙는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양인들에 비해 성보다는 퍼스트 네임을 앞세우는 서양인들의 방식은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추리할 수도 있다. 뒤집어 말해, 유럽인들의 성씨가 다양한 것은 대대손손 성씨를 보전 계승해야 한다는 문화 혹은 의식이 동양권에 비에 옅은 결과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성씨를 ‘만고불변’으로 여긴 동양인들과 달리, 예컨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성씨는 뒤에 접미사를 붙이는 방식으로 가볍게 ‘창출’되곤 했다. 요한(Johan)의 아들은 요한슨(Johanson)인 식으로 성이 파생되곤 했던 것이다. “내가 성을 갈고 말지”할 정도로 동양에서 요지부동으로 성을 인식한 것과 사뭇 차이가 있다.  
성씨가 유럽에서 다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기 직전이었다. 인구가 늘어 난데다, 이때 다양한 방식으로 성씨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온갖 성들이 ‘작명’된 것이다. 반면 중국을 필두로 한 동북아의 경우 기원 2세기 전 즈음부터 성씨가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별다른 퇴조 없이 성씨가 유지돼 왔다. 물론 귀족 등 상류층 위주였지만, 몇 되지 않은 성씨 중심으로 공동체가 꾸준히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국제화 사조가 확대되면서 작명 방식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김이민정’이라는 식으로 부계와 모계 성씨를 같이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있다. 모계 부계 성의 병용은 스페인어 권에서 흔한 현상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흑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 유래 이름에서 탈피해 어감 등을 중시한 새로운 퍼스트 네임들이 다수 작명되는 조짐도 있다.
작명 방식과 새로운 이름들의 출현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이 시대 사람들의 변화된 의식을 반영한다. 그 변화를 불러온 심리적 기저를 읽는 것은 당대 문화의 속성을 통찰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김 창 엽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