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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6분 20초

안진우 기자 입력 2018.04.03 17:53 수정 2018.04.03 17:53

지난 2월 14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이 학교 퇴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과 교사 등 17명이 숨진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걸린 시간이 6분 20초였다고 한다. 이 짧은 시간에 17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니 총기가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총기 소지를 엄격히 규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계속되는 총기 사고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 미국 뉴욕주 전 하원의원 스티브 이스라엘은 2017년 10월 14일 중앙일보에 실린 글에서 “내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재직한 16년 동안 무려 52번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통계에 의하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총기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31만 6,545명에 달한다고 한다.  가까이로는 2017년 10월 1일 밤, 한 평범한 시민이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에 있는 호텔에서 건너편 콘서트장을 향해 약 10분간 수백 발의 총알을 난사하여 58명을 사망시키고 500여 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이런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미국에서의 총기 구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총기를 구입하려면 일정한 신원조회를 거치지만 형식적인 조치에 불과하고 더구나 약 30개 주에서는 총기 구입에 연령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총기를 보유해도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인의 총기 구입이 손쉬운 데에는, 서부개척과 독립전쟁을 거치는 동안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재산은 내가 지킨다’는 미국인 특유의 역사적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직접적인 배경에는 미국총기협회(NRA)의 로비가 있다. 앞서 인용한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의 글에 의하면,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소한 정신질환자의 총기 구매만이라도 어렵게 만들자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부결되었는데, 이는 의원들을 상대로 한 NRA의 막강한 로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민주당이,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른 사람의 총기 구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에도 ‘미국에선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른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고 하는데 여기에도 NRA의 로비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환경에서는 NRA의 입장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은 미 헌법상의 ‘총기 보유의 자유’를 지지하지 않는 인사로 낙인찍혀 정치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의 진단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돈 앞에 약한 정치인의 행태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런 정치적 환경에서 총기 구매를 규제하지 못하고 총기 사고는 계속 일어났다. 드디어 플로리다주 더글러스 고교 총기 사고가 발생한 후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친구들을 잃은 더글러스 고교의 10대 학생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을 내건 지난 3월 24일 워싱턴 DC의 집회에는 약 80만 명의 시민이 모였고 미국 전역의 800여 곳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외치는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번 시위는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한다. 이 와중에도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맞불 집회까지 열렸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태극기 부대’와 닮은꼴이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태극기 부대가 성조기를 들고 나온 이유를 알만하다.
이런 시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강화할 뜻이 없어 보인다. 그는 집회가 열리기 직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골프 클럽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것이 일정한 국정 철학 없이 평생을 재산 모으기에 급급했던 ‘사업가’ 트럼프의 민낯이다. 이 역시, 수백 억대의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성공한 사업가’ 출신의 우리나라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 송 재 소 /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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