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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선택의 연속 ‘넛지의 시대’를 사는 지혜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4.10 18:00 수정 2018.04.10 18:00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일생일대의 중대사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빼고는 결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결정을 맡겨버리는 선택 장애를 겪기도 한다. 그럴 때 누가 슬쩍 옆구리를 찌르며 지나가는 말로라도 한 마디 거들어 준다면 경우에 따라 그것은 큰 힘이 돼 ‘똑똑한’ 선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넛지(Nudge)’ 효과다. 넛지의 개념은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와 법률학자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의 공저 ‘넛지’(2008)를 통해 처음 제시됐다.
이들은 넛지를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의 힘이라고 정의한다.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합리적 인간관과는 달리 인간을 제한적 합리성을 지닌, 때로는 감정적 선택을 하는 존재로 본다. 그런 만큼 선택 설계에 약간의 변화만 줘도 보다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물론 넛지 효과를 일상에 활용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계단을 피아노 건반 형태로 만들어 계단 이용을 유도하고, 무단투기가 많은 곳에 농구 골대 모양의 쓰레기통을 만들어 쓰레기가 흩어지지 않게 하고, 변기 속 파리 그림으로 변기의 불결을 줄이고, 정크 푸드를 먹지 말라고 하는 대신 신선한 과일을 눈에 띄는 곳에 두는 것 등이 다 넛지의 실천이다. ‘넛지’의 공동 저자인 선스타인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 기고를 통해 “세계 여러 정부의 관료들은 넛지 이론을 활용해 연기금을 늘리고 빈곤을 줄이며 일자리를 만들고 도로 안전부터 건강 증진까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넛지의 이치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각국의 정부는 정책 대상자의 심리적인 특성을 반영한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 ‘행동경제’ 정책팀을 꾸렸다. 진보 성향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선스타인 교수를 연방정부의 규제를 감독하는 규제정보국 책임자로 발탁해 상당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넛지를 둘러싼 이념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규제를 혐오하는 보수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됐다. 반면 보수당 캐머런 정부의 영국에서 넛지 정책은 진보 진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넛지 주창자들이 내세우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넛지 이데올로기’의 요체는 대중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동시에 선택의 자유는 개인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그것은 좌파적인 것도 우파적인 것도 아니다. 중도적 선택지다. 우리가 ‘넛지정부’로 나아가는데 있어 유의해야 할 대목도 바로 이런 것이다. 세일러 교수는 “기업이든 정부든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그 일을 최대한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제적인 규제나 감시가 아닌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해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취지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이를 곧 규제 완화를 촉구하는 ‘탈규제’의 근거로 삼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넛지 이론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세일러 교수도 밝혔듯이 넛지의 조건은 투명해야 하며 상대를 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참여하고 싶지 않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고, 유도된 행동이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넛지는 넛지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넛지의 원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설정에도 매우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제 ‘넛지사회’다. 정부는 정부대로 또 민간은 민간대로 넛지의 주체로서 창조적 역할을 다할 때 우리는 한층 조화로운 ‘성숙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 김 종 면 겸임교수 /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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